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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지 않는「심리적 장벽」/1990년 10월3일(하나의 독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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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지 않는「심리적 장벽」/1990년 10월3일(하나의 독일:3)

입력
199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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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인들 「촌티」에 차가운 시선/거만한 서독인 보며 당혹ㆍ좌절/「체제과오」스스로 따지는 정서적 고통도 심각지난해 11월 베를린장벽붕괴와 함께 독일이 「통일열차」를 출발시켰을 때 독일인들 자신과 외부세계는 국제정치적 이해관계를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장애로 생각했었다. 피폐한 동독경제의 흡수비용 또한 통일열차를 저지하는 힘겨운 부담으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콜 서독 총리의 표현대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통일열차는 눈부신 속도로 장애물들을 통과,종착역에 다가서고 있다. 독일의 잠재해 있던 정치적 힘과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면서.

그러나 지금 독일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환희의 축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통일열차의 속도에 취해 잊고 있었던 사회적ㆍ심리적 통일의 문제가 한층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분단 45년간 형성된 동ㆍ서독인간의 심리적 장벽은 냉전이 쌓아올린 정치ㆍ군사적 장벽보다 한층 견고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통제체제의 질곡속에서 동독인들이 겪은 정서적 상처는 경제적 시혜만으론 쉽게 치유될 수 없는 뿌리깊은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베를린장벽 붕괴당시와 지난 7월1일 경제ㆍ사회통합이 단행됐을 때 동ㆍ서독인들은 뜨거운 「형제애」를 과시했다.

그러나 지금 그같은 감동적인 우애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서베를린 중심부 쇼핑가의 염가백화점 주변에는 요즘도 월요일 아침부터 싸구려 전자제품을 비롯,식료품 신발 등을 무더기로 산 동독인들의 쇼핑행각이 이어진다. 폴란드인들까지 섞인 이들 동독인들때문에 백화점 앞 인도를 지나기가 불편할 정도다. 또 이들은 백화점용 손수레에 잔뜩 물건을 쌓아담은채 거리로 밀고 나오기 일쑤다. 그런데 이들을 보는 서베를린인들의 눈길은 그리 따뜻하지 못하다.

대형전자제품박스를 짊어진 채 동베를린행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진땀을 흘리는 동독인들을 도와주려는 서독인들은 볼 수 없다.

심한 매연을 내뿜으며 느린 속도로 길을 찾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동독 트라반트 승용차도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된다.

고속도로의 일방통행진입로를 잘못 들어선 동독승용차운전자가 길을 막고 선채 연신 클랙슨을 울려대는 서독운전자들 때문에 한층 당황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서독인들의 이같은 이질감과 불평을 학자들은 안정이 침해받는데 대한 불안감의 표현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독인들은 전후폐허에서 이룩한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안정을 어느 국민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고,통일로 이 안정이 흔들릴 것에 본능적인 불안과 반발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은 실제 최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여론조사에서 서독인의 29%가 통일에 반대하고 있다는 결과로 입증됐다. 이 조사는 또 서독인의 69%가 통일이 서독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28%만이 그 희생을 감수할 용의가 있음을 드러냈다.

동독인들이 갖는 이질감은 한층 심각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가장 일상적인 접촉에서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의 부의 과시와 거만함,불친절등에 당혹감과 좌절을 느끼고 있다. 동독 노이에스 도이칠란트지의 페터ㆍ키르세이기자는 이를 『자존심을 상실한 국민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지적한다.

동독인들은 장벽붕괴전 서독친척들이 고급차를 타고 고향을 찾고,휴가철이면 스페인휴양지에서 안부카드를 보내와도 트라반트승용차와 사회주의적 평등사회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자부심을 상실한 지금,서독인들의 몰이해는 동독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견고한 벽에 부딪친 느낌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동독의 저명한 소설가 요아힘ㆍ발터 (작가협회부회장)는 『동독인들은 바나나만을 위해 동독체제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자유와 인간적인 생활을 향한 갈구끝에 비인간적 물질주의에 직면하는 비애를 이해하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독일인 내부의 심리적 장벽에 못지 않게 심각한 장애는 동독체제가 동독인들에게 남긴 정서적 상처를 치유하는 문제다. 동독의 지식인들은 체제에의 동조정도에 관계없이 잘못된 체제를 유지 존속케했던 과오의 책임을 스스로 따지는 고통스러운 작업에 직면해 있다.

이를 지난해 민중혁명을 주도했던 노이에스 포룸의 지도자 옌스ㆍ라이히는 『동독인들 스스로 괴물을 해부,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인들이 전후 히틀러의 제3제국의 죄악을 철저히 반성,거듭났듯이 동독인들도 체제의 과오를 해부하는 고통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이미 동독사회내부에 갈등과 분열을 조성하고 있다. 동독체제의 과오와 죄악을 상징하는 비밀경찰인 슈타시의 비밀기록서류의 처리를 둘러싼 논쟁이 이같은 갈등을 대표한다.

동ㆍ서독내 슈타시협조자의 신원기록을 포함한 이 슈타시 서류더미를 연방정부관리하에 넘기는 문제를 놓고 벌어졌던 치열한 논쟁은 통일조약에서 일단 동독에 그대로 두는 것으로 유보됐다. 그러나 지금도 동베를린 모아멘가의 슈타시본부 앞에서는 각종 시민단체가 이 기록들을 조기공개하라는 단식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서독역사학자 하름ㆍ크뢰팅교수는 『통일후에도 독일역사는 철저한 체제신봉세력인 동독역사 학자들에 의해 두갈래로 쓰여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동독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은 지난해말 이후 2백30만명의 당원이 60만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프리더ㆍ부를 PDS 국제국장은 『올들어 2천명의 당원이 새로 입당했다』며 『우리는 역사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지 않고 있으며,동독인의 특수이익을 대변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민족은 나치 12년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4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지금 통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독일인들은 「나치12년」과 「분단45년」의 비중을 우려와 함께 저울질 하고 있다.<글ㆍ사진=강병태베를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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