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즉시 흑인 내각참여ㆍ입당허용등 개혁/지도자론 첫 방미… 「국제고아」서 탈피 시도지구상의 유일한 인종차별주의(아파르트헤이트)국가인 남아공의 프레드릭ㆍ데클레르크 대통령이 남아공지도자로서는 45년만에 처음으로 지난 23일부터 미국을 방문중이다. 지난 22일로 취임 1주년을 맞기도한 데클레르크 대통령의 방미는 그의 도착성명처럼 『남아공에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대외적으로 각국가들의 모임에 적극 동참하는 대장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집권 국민당의 내분으로 11년간 강압철권통치를 펴온 피터ㆍ보타 전대통령이 도중하차한데 따라 당권을 인수한 데클레르크 앞에는 소수백인(5백만명)의 다수흑인(2천7백만명)에 대한 지배라는 기형적 권력구조에서 파생되는 끊임없는 정정불안과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조치(67년)로 비롯된 국제적 고립등 난관이 산적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대통령임기인 5년내 모든 인종의 정부구성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키겠다던 그의 개혁의지는 숱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희망적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그는 같은 백인세력내 극우보수파의 반발속에서도 흑인인권운동의 구심점인 넬슨ㆍ만델라를 석방,지난 5월 양자간의 첫 평화회담을 통해 흑백인종간의 공생을 위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또 취임즉시 아파르트헤이트의 근간을 이루던 시설분리법 철폐를 약속한 후 백인전용 해변 휴양지를 전면 개방했는가 하면 문교장관의 전력을 되살려 내년 신학기부터는 모든 학교의 흑백공학실시를 공약했다. 심지어 48년간 아파르트헤이트의 산실이 돼온 집권국민당에도 흑인당원 영입을 호소,그의 개혁속도에 정권내부에서 조차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다.
데클레르크의 이같이 발빠른 행보는 그의 정치적 현실주의 감각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으나 「탈식민민주화」라는 시대적 요청과 23년간 지속된 국제적 고립으로부터의 탈피가 큰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해 6월의 중국 천안문사태와 동구권의 민주화 「도미노」현상은 남아공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 않아도 흑인들의 참정권 요구와 정치개혁 투쟁으로 정권유지에 급급해야할 백인정권으로서는 시대조류에 따라 한목소리로 쏟아질 국제적 비난을 감내하기에는 역부족인 형편이다.
이는 냉전의 골이 깊던 시절,쿠바등 사회주의 진영을 등에 업은 아프리카 민족세력의 견제책으로 남아공에 대한 음성적 지원을 계속한 서방진영이 현재의 동서 해빙무드 속에서 더이상 도덕성을 상실한 백인정권을 지원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동구권의 민주화로 그간 서방측 주도하에 23년간 지속된 봉쇄조치를 뚫고 구상무역형태로 남아공과 뒷거래를 즐겨온 동구국가들마저 국제적 제재에 동참하는 사태로 발전,남아공은 더욱 목줄이 조이게 됐다.
경제뿐만이 아니라 정치ㆍ체육분야의 제재로 완전히 「국제미아」로 전락한 남아공은 풍부한 인적ㆍ물적자원에도 불구,80년대 들어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외채 2백70억달러에 30%의 실업률로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
아직도 출범 1주년으로 개혁의 첫발을 내디딘데 지나지 않는 데클레르크 대통령이 나머지 4년 임기동안 완전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 선거에서 데클레르크의 개혁을 내세운 국민당이 기존의 1백23석에서 30석을 잃은 참패로 겨우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얻은 반면,22석에서 39석으로 늘어난 「기득권 절대사수」의 백인극우세력 목소리가 한층 증대돼 임기를 채울 수 있겠느냐는 우려마저 배제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더구나 흑인세력내에서의 주도권 다툼인 「흑ㆍ흑 대결」의 격화도 자칫 악재로 작용할 염려가 있다.
과연 데클레르크가 시대적 요구인 남아공의 민주화를 계속 이끌어갈 수 있을지 그의 어깨가 무거워만 보인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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