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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며 배운다/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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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며 배운다/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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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에서 베트남 다음으로 입장한 한국선수단은 무질서한 행동으로 스탠드의 관중들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됐다」북경 아시안게임 개막식 스케치기사의 서두이다. 기사에 의하면 맨뒷줄에서 입장하던 선수들이 대오를 이탈해 관중에게 태극부채를 건네주고 잡담과 사진촬영에 열중했으며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기가 게양될 때는 앞줄에 서있던 임원들까지 사진촬영을 하느라 법석을 부려 옆에 서있던 몽고선수들과 구별이 안될 정도였다.

어디선가 본 모습이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때 미국선수단이 바로 그랬었다. 우리는 당시 미국선수단의 건방짐,안하무인의 태도에 모욕감과 불쾌감을 느꼈었다. 「Hi Mom,I’m Here」(엄마 나 여기있어)라고 쓴 종이를 관중석쪽으로 들어 보이며 입장하고,잡담을 나누거나 대오를 벗어나 뒷줄 동료의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분개한 사람들은 많았다. 우리의 엄숙주의,예의와 염치를 중시하는 성향이 미국인들의 개방성과 분방함을 이해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태도는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볼성사나운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미국선수단의 볼성사나운 짓을 그대로 답습했다. 미국선수단이 우리나라를 식민지쯤으로 생각해서 그랬다고 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상국」에 대한 보상콤플렉스에서 그런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그렇게 대단한 나라가 되었나. 북경의 경기장이 한국기업의 광고로 도배질돼 있고,일부 선수들이 다른 나라에선 엄두도 못낼 개소주등 강정식품까지 싸갔고,이번 개막식행사가 서울올림픽의 충실한 표절임이 분명하고,그들의 색채감각이 아직은 조야하고,우리는 공식참가인원 2천여명에 관광객이 4천여명이나 건너갔으니 중국이라는 나라쯤 우습게 봐도 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국내 전국체전때 하던 버릇대로 대회규정보다 더 많게 「유령임원」까지 파견하고 과소비와 싹쓸이 쇼핑의 진수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양 TV가 새벽방송,낮방송까지 하면서 북경붐을 일으키고 있어 남의 잔치에서 경박하게 설쳐대는 주책바가지라는 인상이 더욱 짙어진다.

이러다가 오만한 우리 선수단과 관광객들이 서울올림픽기간에 호텔에서 물건을 훔쳤던 미국인들처럼 망신을 당하는 사건이나 중국 국민들과 갈등이나 마찰을 빚는 일까지 생길지 모른다.

우리는 욕하며 배운다. 부유층의 행태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본받고 정치인들의 못된 행동을 욕하는 사람들도 각자의 상황에서 「정치」가 필요해지면 어느새 정치인들의 말투와 술수를 모방한다. 아시안게임은 우리의 그런 천박성과 알맹이도 없는 오만을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욕하며 배우지 말자. 욕만 하고 배우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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