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요즘 북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북한 체육장관과 체육관계인사들의 접촉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북한은 겉으로는 미소와 화해를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여전히 빗장을 단단히 걸어놓고 있는데도 우리측만 들떠 일방적으로 남북축구전이니,장차 남북한 단일팀 구성이니,사이클대회니 하고 요란을 떨고 있는 게 아닌가 보여지니 그러하다. 이번에 우리측이 북경에서 보인 대북 체육인 접촉 자세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40년 이상 북한의 대남전략을 접해왔으면서도 상대방에 대해 이렇게 어리숙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토록 경직됐던 북한이 북경대회에 갑자기 미소를 띠며 공동응원을 제기하고 나선 배경을 너무 안이하게 본 것도 불찰이었다. 임박한 한ㆍ소 국교정상화와 한ㆍ중간의 접근 그리고 밀려오는 개방압력에 따른 고립에서 벗어나 평화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총리회담에도 응하고 또 아시안게임에도 미소 공세로 나오는 것은 짐작하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는 말이다.
오늘날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남한이 북방정책,즉 소련 중국과 손을 잡고 가해오는 파상공세이다. 그럼에도 완전합의되지 않은 남북축구전을 정부는 큰 성공인양 발표했고 체육장관은 북경 향발에 앞서 체육을 통해 당장 남북간의 물꼬를 틀듯이 체육회담을 갖겠다고 선언해버리는 등 혼선을 자초했던 것이다.
소위 체육장관회담이라는 것을 끝내고난 뒤의 성과는 속 빈 강정이었다. 앞서 체육인들끼리 의견을 모았던 공동응원을 확인하고 지난 4월 중단됐던 남북체육회담을 조속히 재개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결실도 없었다.
저들은 축구 남북전도 동의한 일이 없다고 잡아뗐고,남한측이 들떠서 추가제의한 남북사이클대회와 91년 일본세계탁구대회,92년 올림픽 단일팀문제 등도 모두 체육회담에 미뤄버려 대북대화의 한계를 새삼 절감케 하고 있다. 특히 남북전의 경우 북측이 제의한 일도 합의한 일도 없다고 부인함에 따라 국민들은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정부가 「실적」을 과시하기 위해 의사교환 과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인지,저들이 예의 생떼작전을 벌였던 것인지 여부를 마땅히 해명해야 하며 북한의 진정한 의중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대비 없이 연쇄접촉을 즉흥적으로 치러낸 「한건주의」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국민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남북 체육관계인사들의 접촉뿐만이 아니다. 일부 정계ㆍ재계인사들의 북경에서의 동정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재계의 일부 총수들이 중국측과의 상담을 겸한 것이라고 하나,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정부 실업계 관광객 등을 봉으로 삼아 아시안게임을 치른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인데 꼭 대회기간에 갔어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박철언 전정무장관의 몸가짐 역시 석연치 않다. 한국 집권당국의 밀사 운운하는 것은 한낱 외신의 추측보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출발 전 「순전히 개인적인 용무의 방중」이라고 밝혔으면서도 현지에선 아시안게임 후 한ㆍ중간에 무역사무소가 개설하고 영사관계가 이뤄질 것이라고 버젓이 밝힌 것은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정말 대통령으로부터 비밀특명이라도 받았다는 것인가. 국민의 의혹만 사는 비밀잠행역은 두번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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