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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특파원 「역사적 재통일」현지취재(하나의 독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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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특파원 「역사적 재통일」현지취재(하나의 독일:1)

입력
1990.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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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3일/흥분없이 조용한 기다림/환호 사라진 장벽선 「잔해깨기」오락/동서베를린 이미 동화… 구별 힘들어독일민족은 오는 10월3일 0시 정각 역사적인 재통일을 이룬다. 이 감격의 순간을 독일인들은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현장에서 독일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맞이한다. 동ㆍ서 베를린을 갈랐던 장벽의 잔해들이 이제는 지나간 오욕과 고통을 증언하는 유물로 남은 자리에서 독일과 독일민족이 완전히 하나가 됐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독일통일에 즈음,분단 45년만에 재결합을 이루는 역사의 숨가쁜 현장을 찾아 통독에 따른 산고를 진단해 보았다.<편집자주>

지난 1841년 제정프러시아 당시 채택된 독일국가는 「통일이여 오라!」라는 기원아닌 구호로 시작한다. 독일민족은 이미 9세기에 로마군단을 튜츠부르크숲에서 격파,라인강을 로마와 게르만세계의 경계로 만든 강인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대륙의 중심에 자리한 운명적인 지정학적 위치는 유럽 어느 민족보다 늦은 1871년에야 통일국가형성을 가능케 했다.

프러시아제국과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독일제국으로의 최초의 민족통일은 겨우 70여년간 지속되는데 그쳤다. 이 짧은 통일기에 독일민족은 「제국의 영광」이 환상이었음을 두차례의 참담한 패전과 몰락으로 절감했다.

히틀러의 제3국이 남긴 것은 민족자체의 「범죄성」에 대한 낙인과 민족분단이었다. 그러나 10월3일,독일국가에 담긴 게르만민족의 「통일ㆍ정의ㆍ자유」를 향한 오랜 염원은 비로소 완전히 실현된다. 독일인들은 「재통일」이란 규정을 거부하고,굳이 「통일」로 표현한다. 과거의 통일은 정의ㆍ자유를 이루지 못했으며,따라서 새로운 통일독일은 전혀 다른 독일이란 주장이다. 브란덴부르크문을 중심으로 펼쳐질 통일축제가 민족사상 가장 순수한 환희와 자부로 충만한 축전이어야할 당위는 여기에 있다.

독일국가의 통일구호는 「조국 도이칠란트여 영원히 번영하라」는 기원으로 이어진다. 통일독일의 잠재력을 알고 있는 주변민족들은 시기와 우려,그리고 부러움이 뒤섞인 시선으로 통독축제를 지켜보며 게르만의 향후행보를 조심스레 가늠하고 있다.

독일과 유럽,나아가 세계질서의 장래에 커다란 변혁을 예고하는 「20세기 최대의 사건」 독일통일은 그러나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6천만 서독인과 1천6백만 동독인의 환호가 물결쳤던 브란덴부르크문은 통일일정과 무관한듯 보수공사가 느긋하게 진행되고 있다. 10월4일 첫 통일의회가 열리는 브란덴부르크문옆 구 제국의회 건물주변도 관광객들로 한가롭다.

71년 시작된 「독일역사 전시회」가 계속되고 있고,의회 앞 드넓은 공화국광장 잔디밭에서는 캠핑가를 몰고온 헝가리등 동구인들이 공을 차고 있다. 광장옆 숲에는 동구여인네들이 널어놓은 빨래가 자유의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다.

제국의회 옆을 끼고 흐르며 동ㆍ서 베를린을 갈랐던 슈프레강둑에는 장벽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가요와 십자가가 강건너 장벽잔해들과 함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옆에서 브란덴부르크문앞 광장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장벽파편과 동독국기ㆍ동독군 철모ㆍ군복ㆍ군모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마지막 재고 정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동차행상의 보닛위에 널려있는 35마르크짜리 동독국기가 제국의회옥상에 펄럭이는 전통의 독일국기와 대조를 이루며 동독의 소멸을 웅변하고 있다. 이곳에서 동독의 존재는 역사극의 단역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브란덴부르크문 너머 동베를린 거리의 주요건물에는 아직 전통적 독일국기 중앙에 망치와 컴퍼스가 그려진 동독국기가 걸려 있다. 그러나 초행의 관광객에게는 동ㆍ서 베를린의 구별이 쉽지 않을 만큼 동ㆍ서는 동화돼 가고 있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포츠담광장에 이르는 장벽주변의 「죽음의 공간」은 이미 잔디공원으로 만들어져 소년들의 축구장이 됐다.

감시망루는 철거된지 오래다. 망루대신 세워진 카멜담배선전판 옆에서 철지난 관광객들이 정과 망치를 빌려 콘크리트장벽 잔해를 깨는 「오락」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문앞 동베를린의 운터덴린덴거리로 이어지는 파리광장에는 관광객들이 코카콜라선전 파라솔아래서 감흥없는 장벽관광에 실망하고 있다.

이들에게 독일순대 등을 파는 노점상은 국방색페인트가 선명한 동독군의 야전취사용 트레일러를 쓰고 있다. 동독군은 지난달 트럭 등 장비를 대량 공매했고 공포의 비밀경찰 슈타시도 통신기재 등을 공개판매했다.

운터덴린거리끝에 있는 「파시즘과 군국주의 희생자추모관」앞에서는 지금도 매일 동독군장병들의 프러시아식 거위걸음으로 교대식을 벌인다.

하지만 곧 해체될 군대의 자못 엄숙한 이 행사는 관광객들의 카메라앞에서 장난감병정의 움직임으로 비쳐질 뿐이다. 알렉산더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의 공화국궁전옆에 있는 대소 우호기념비에는 초라한 꽃다발 한묶음이 「소련과의 우호여 영원하라」는 비문앞에 놓여져 있다. 그러나 운터덴린거리의 소련대사관 앞에서는 소련군 즉각철수를 요구하는 동독인들의 시위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지난해 10월 반공산시민혁명의 중심이었던 알렉산더광장은 동독의 민중혁명이 「쇼핑붐으로 끝난 유일한 혁명」임을 실감케 한다. 광장옆 대형슈퍼마켓은 서독제품들로 가득차 있고,입장순서를 기다리는 동독인들의 행렬이 이어져 있다. 이미 몇군데 문을 연 서독슈퍼체인점에도 호기심어린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의 경제ㆍ사회ㆍ화폐통합 이후 동독의 대량실업과 기업도산 등에 대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후유증은 조정기의 진통에 그칠 것으로 낙관되고 있다. 각종 경기지표는 이미 경제상황의 호전을 예고하고 있다. 오히려 내년 여름께는 본격적인 「제2경제기적」이 독일전역에서 시작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40년간의 단절은 동독인들에게 심각한 심리적 적응의 어려움을 안겨줄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미 동ㆍ서독은 절단됐던 신경 등 생명선을 성공적으로 접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외부적 장애를 우려하던 견해들도 「2+4」회담이 간단한 「통과의례」처럼 타결되는 상황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동ㆍ서 베를린을 연결해온 포츠담광장,체크포인트 찰리 등 차량통로는 온종일 동ㆍ서독 차량들이 뒤섞여 러시를 이루고 있다. 많은 동독차량들은 이미 「DDR」(동독)표지를 「D」(서독)표지로 바꿔 붙였다.

독일인들은 민족사상 최대의 축제분위기를 애써 자제하는 듯한 인상이다. 서독정부는 10월3일을 경축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축제무드를 돋우는 조치는 없다. 축제행사 내용마저 개별언론보도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축제와 통일준비는 확실히 진행되고 있다. 제국의회의 주회의장에는 동독지역대표 숫자까지를 계산한 의석이 새로이 설치돼 비닐포장으로 덮인채 역사적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제국의회 옆으로는 일반차량이 잘 알지 못하는 동베를린과의 차량통로가 어느 사이엔가 뚫렸다. 장벽옆 동베를린지역의 버려졌던 건물들도 대대적인 보수ㆍ신축공사가 한창이다. 2차대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던 죽은 거리들이 다시 전전 게르만제국의 수도기능을 회복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서독언론들은 언제부턴가 동독을 「과거동독지역」으로 지칭하고 있다.

서독의 학자들은 NATO 문제 등 정치안보적 이슈들을 「무용」한 것으로 규정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국가간 질서의 게임법칙이 변화한 지금 경제가 유일한 경쟁의 요소라는 지적이다.

독일의 주변국들은 이제 통일독일이 동구권의 경제통제력을 장악,유럽을 다시 제패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아직은 자세를 낮추고 있다. 독일국가는 원래 3절로 되어 있고,첫째절은 「도이칠란트최고」란 구호로 시작한다. 이 구호는 당초 민족통일을 촉구하는 의미였다.

그러나 게르만과 오만과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는 뜻으로 오해돼 와 이 때문에 서독은 「통일」로 시작되는 셋째절만을 공식행사에서 불러왔다. 10월3일 0시 통일독일인들이 부를 국가도 이 셋째절로 예정돼 있다. 그러나 변전을 거듭하는 세계사는 독일인들이 어느땐가 다시 「도이칠란트최고」를 주저없이 외치고,그로 인해 세계질서에 파란이 일 때를 예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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