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을 지향하는 동북아의 역사적인 전환점이 이달말로 다가서고 있음이 공식확인됐다. 30일로 예상되고 있는 한국과 소련의 외무장관회담에서 두 나라의 「정식수교합의」가 발표될 것임을 우리 정부는 밝히고 있다(한국일보 22일자 1면 보도).청와대당국은 노태우대통령이 「수교합의」로 해석되는 「지침」을 최호중외무장관에게 시달했음을 밝혔다. 이와 함께 소련정부도 우리측의 모스크바 주재 영사처에 30일의 두 나라 외무장관회담에서 「수교합의」를 발표하자는 제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길이 트인 서울모스크바관계는 2년 만에 「수교」의 관문을 열게 된 셈이다.
2년에 걸친 탐색과 협상은 수교를 서둘러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사실 지루한 시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모스크바의 정식수교는 우리측보다는 소련측에 결단이 요구되는 「역사적 과제」였다.
소련이 한국과 정식국교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여려가지 뜻에서 전후 반세기 가까운 냉전시대 유산의 청산을 결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으로 소련은 평양과의 일방적인 동맹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된다.
어쨌든 이번 소련은 「동맹관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북한의 저항을 무릅쓰고 우리측과 국교수립을 공식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유럽의 탈냉전이 독일통일로 확인된 것과 맞먹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동북아의 탈냉전이 현실적으로 확인되는 절차가 바로 소련의 대한국 수교라고 하겠다. 동북아의 긴장완화와 함께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역학관계에도 서서히 변화가 올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사태발전에 우리로서도 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비태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우선 2년에 걸친 소련과의 교섭과정을 돌이켜볼 때,탈냉전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될 역할과 짐에 대해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첫째로 막중한 국가이익이 걸려 있는 외교정책은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몇몇 당국자나 정치인들이 외교문제를 「독점」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소련과의 수교합의만 하더라도 그에 앞서 수년동안 20억달러 규모의 경제협력이라는 짐이 전제돼 있다. 우리로서는 악화돼 가는 국제수지 추세로 볼 때 상당히 큰 부담이다.
물론 이 정도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경제적 평가를 경솔히 할 일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정치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러한 부담이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결정됐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는 당장 통일에 이르지는 못해도 통일을 내다보는 기반으로서의 평화와 새로운 다원적 국제관계의 무대에 접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슬기롭게 통제하고 그에 적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당면한 목표는 바로 평양과의 관계설정에 있다. 스포츠교류 등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평양측을 주시하면서 소련과의 「수교이후」를 어떻게 구상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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