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소련간의 정식 외교관계수립이 임박해오면서 북한과 소련간의 관계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한소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북한의 심정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최근 북한이 소련에 건네주었다는 비망록을 보면 북한의 감정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얼마전 소련의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한소수교문제가 정식 제기되었을 때 전했다는 이 비망록에는 소련에 대한 섭섭함과 배신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특히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갖는 것은 다른 국가들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갖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전제하면서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분열시킨 데 책임이 있는 국가이고 또한 소련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창건되었을 때 최초로 공화국을 조선민족의 유일한 합법국가로 인정한 국가』라는 사실을 들어 섭섭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소련이 그럴 수 있느냐』는 개탄이다.
그리고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다면 조소동맹조약을 스스로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경고나 『그렇게되면 우리는 이제까지 동맹관계에 의거했던 일부 무기들을 자체로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협박은 극도로 악화된 북한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비망록이 이제야 공개된 것은 소련의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지가 지난 12일 「서울과 모스크바간 국교수립이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논평기사를 통해 『소련은 한소수교문제가 한소양국 뿐 아니라 북한에도 이로운 일이며 소련은 자주국가이므로 한국과 외교관계수립시 북한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보도를 먼저했기 때문이다.
이 보도에 대해 북한 정무원기관지 「민주조선」은 19일자 개인 필명의 논평을 통해 「하도 고약한 글」이라고 발끈하면서 『이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나라 다른지역 심지어 동맹국의 이익마저 침입하면서 일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놓은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민주조선」에 의하면 『조소외교부장 회담시 소련이 남조선과의 외교관계 설정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관심을 가졌으며 우리는 그것이 조선의 통일에 결정적으로 방해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고 했고 이에 소련 외무상은 왜 조선이 통일에 방해되는 가를 문의했다』는 것이다.
이 문의에 대해 『우리 외교부장은 대답을 주었으며 후에 그 내용을 비망록으로 소련측에 넘겨주었다』고 민주조선은 전하면서 이즈베스티야지가 「조소외교부장회담」을 평가하면서 한소수교는 『소련의 이익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자주적인 국가인 소련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므로 그 누구의 승인을 물을 필요가 없다』는 「하도 고약한 글」을 실었기 때문에 비망록을 공개하게 된 것이라고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내외통신보도)
이 논쟁에서 누가 옳으냐는 판정은 남북한 주민과 세계여론에 맡기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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