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여회 출동 6백여인명 구해/서울시민회관 화재등서 숱한공/부인 소식듣고 실신… 병석노부 눈물만서울시민회관 대연각호텔 등 대형화재현장에서 「불나비특공대」로 많은 공을 세웠던 서울 종로소방서 세종로파출소 고기종소방장(48ㆍ서울 강서구 화곡3동 주공아파트)이 19일밤 진화작업중 실족사해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있다.
고씨는 이날밤 불이난 서울 중구 의주로2가 녹지대안에 있는 지하 송ㆍ변전실에 뛰어들었다가 11m아래로 떨어져 소방생활 23년을 불운으로 마감했다.
지난67년 소방관이된뒤 종로소방서에서만 23년9개월을 근무해온 고씨는 그동안 7천여번을 출동했으며 6백여명의 인명을 구조한 베테랑소방관이었다.
동료들은 그를 『의협심이 강하고 동료애가 많은 모든 사람의 다정한 벗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화재현장에 제일먼저 달려가 「제트기」로 통했으며 너무 일에 집착한 나머지 「멍청하고 우둔한 사람」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지난72년 12월 서울시민회관 대화재는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직분에 충실한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고였다.
당시 처음도입된 굴절사다리차의 운전요원이었던 고씨는 화단이 장애가 되어 사다리를 대지못해 모두가 안타까워할때 수십차례의 시도끝에 사다리차로 화단을 넘어 건물벽에 바짝접근시켜 60여명의 학생을 구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만약 사다리차를 건물벽에 붙이지 못했다면 각도가 맞지않아 많은 생명이 희생당할뻔 했다』고 동료 이영주예방주임(48)은 회고했다.
고씨는 이에앞서 71년 12월의 대연각호텔화재와 74년10월의 뉴남산호텔화재,74년11월의 대왕코너화재 등 대형화재 현장에서 소방특공대로 수십명의 인명을 구해냈다.
그가 재직중 받은 표창만도 내무부장관,서울특별시장 표창 등 13회나 된다.
7형제의 장남인 고씨는 박봉으로 동생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장가도 보내는 등 집안의 기둥이었다.
노부모와 부인,중ㆍ고생 자매와 함께 월급 46만원으로 어렵게 살아온 고씨는 전세로 전전하다 몇년전에야 비로소 21평짜리 주공시범아파트를 겨우 장만했다.
부인 김정숙씨(40)는 참변소식을 듣고 실신,남편의 시신이 안치돼있는 고려병원에 입원중이다. 중풍에 시달리는 아버지 고경환씨(72)는 병석에 누워 눈물만 흘리고 있다.
같은해 종로소방서에 들어와 23년동안 한솥밥을 먹어온 이영주주임은 『남다른 긍지와 신념을 갖고 살아온 동료의 죽음에 내몸 반쪽이 없어진듯 허탈하기만 하다』며 고씨의 넋을 기렸다.
고소방장에게는 1계급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되며 장례식은 22일 종로소방서장으로 연수된다.<이충재기자>이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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