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문제를 다루는 국회가 여론재판하듯 하면 곤란하다. 국회가 유권자의 감정 섞인 불만이나 피해자들의 한을 대신 풀어주는 한풀이장으로 전락해서는 안되는 것이다.사람의 잘못 때문이었는지,행정의 실수 때문이었는지,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가려낸 뒤 책임소재를 추궁하고 확실한 복구대책과 충실한 구호대책을 마련하는 여론여과와 수렴의 장인 동시에 국정의 중심이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강대홍수를 따지는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가 「인재냐 천재냐」 하는 구름잡기식 공론으로 일관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이번 대홍수는 크게 보아 일산둑 붕괴와 고양군 일대 침수,서울 성내동 풍납동의 침수,충주댐 유역의 범람 등 세가지로 대별할 수가 있다. 이 세 장소는 크나큰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지만 수해를 당하게 된 원인과 과정은 다소 달랐다. 그러나 국회는 냉정과 침착을 잃고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따지는 진상규명에 실패하고,셋을 싸잡아 「인재 천재론」에 뒤섞어버려 혼란만 자초해버렸던 것이다.
정부당국자의 천재론을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만일 하루사이에 5백㎜ 이상의 집중호우가 파리나 런던 동경에서 발생했어도 적지 않은 피해가 났을 것이다. 그런 규모의 비라는 것이 1백년이나 그 이상의 빈도로 발생하는 것인만큼 경제성을 무시하고 무작정 완벽한 수방대책을 세워놓았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홍수는 일단 천재였음을 인정하는 선에서 인재가 어느정도 겹쳤던가를 따지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일산둑 붕괴의 경우 둑의 보수요청을 도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던가,둑이 붕괴되기 시작한 뒤 주민 대피 시작까지 귀중한 2시간을 허비했다던가 하는 행정실수는 호통을 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새벽에 그 넓은 지역의 주민을 모두 대피시켜 인명피해를 극소화시킨 노력은 나름대로 평가했어야 했다. 성내동 등의 경우 배수펌프에 문제가 있었다. 그것도 서울시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지만,그것은 구조적으로 따져 개선해가야 할 성질로 간접 인재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충주댐의 경우는 달랐다.
수몰선을 잘못 책정했다던가,전국체전을 위해 만수위를 유지하다가 큰 비를 만나게 되었다던가,대홍수의 마지막 단계에서 서울 도심지역의 대범람을 우려,방류를 중단했다던가 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람의 잘못,즉 오판에 의한 인재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물이 범람할 대단위 시멘트공장을 포함한 주택지역에 사전예고를 해주지 않아 피해를 가중시킨 결과에 대해 관의 직무유기,직무태만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일 단행된 인책개각은 인재부분에 대한 인책이 일단 과녁을 제대로 맞춘 것으로 보여 말만 무성했던 민자당 국회의 추궁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하루아침에 집과 농경지와 공장을 잃고 사랑하는 가족까지 앓은 수재민의 입장에서라면 서울시장,내무장관,국무총리까지 모두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신상필벌을 공명하게 하는 것이 기강확립과 민심수습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볼 때 정부의 인책범위는 책임한계를 인식한 합리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더욱이 개각때마다 여론을 살피며 우유부단하던 정부가 이번 개각에서 적기에 결단을 보인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만하다.
정부는 앞으로 수해복구에 최선을 다하게 되겠지만,차제에 수방대책일원화를 제도화할 것도 잊지말 것을 권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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