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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좌절/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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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좌절/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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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민들을 돌보던 젊은 공무원이 볶이고 시달리다 못해 『이렇게 밤을 새우며 고생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며칠전 보도됐다. 국민학교에 수용된 수재민들의 갖가지 요구와 항의,적대감따위를 견디지 못해 털어놓은 말이었다.그 말에는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면서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열심히 도우려 했던 젊은 공무원이 좌절과 무력감에 지쳐가는 모습이 배어있다.

공무원들이 좌절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박봉과 격무탓이지만 요즘엔 권위상실이라는 새로운 요인이 겹쳤다. 관직의 권위에 대한 전통적 전근대적 존경과 신망이 무너지고 새로운 민주적 신망의 기초는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늘의 공무원들은 좌절과 방황을 겪고 있다.

군수가 농민들의 위협에 무릎을 꿇고 교통경찰관이 얻어맞거나 버스에 매달린 채 끌려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19일엔 국도를 점령한 수재민들에게 붙들려 「수자원공사의 실책을 규명하고 피해를 전액 보상하며 수해지역민을 집단이주시켜 줄 것을 약속한다」는 무책임한 각서를 써준 도지사가 경질됐다.

아직도 사농공상의 위계를 토대로 한 신분사회의 성격이 강한 나라에서 근대화ㆍ선진화를 입안ㆍ추진해온 사회발전의 주체였던 공무원들이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그동안 정부 각부처의 공무원들은 나름대로 개성이 있었다. 「A부처직원들은 빤질거리고 B부처는 순박하고 C부처는 괜히 목에 힘이나 준다」는 식의 인상은 각 부처의 업무내용이나 행정처리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나마도 많이 희석돼 무기력과 소심,무사안일의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 6ㆍ29 이후의 혼란과 무질서,분출하는 욕구와 이기주의의 영향탓이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공무원들 스스로 부적응증을 치유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이제 민주적 신망의 기초를 다져가는 새로운 행정에 빨리 익숙해져야 하며 저마다 전문화의 길을 찾아야할 때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보사부는 지금까지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해당학교에 지급하던 생활보호ㆍ의료부조 대상자들의 중학교,실업계고교 자녀학자금지원을 바로 학부모들의 은행계좌에 입금되도록 최근 개선했다. 지급이 늦거나 학교내에서 저소득학생의 신분이 노출돼 열등감을 갖게 되는 부작용을 해소하겠다는 배려이다.

이처럼 사소하지만 국민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일거리는 얼마든지 많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는 공무원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평소에 그같은 노력을 계속함으로써 공무원들은 국민들과 새로운 신뢰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한다.

좌절과 무기력은 빠른 속도로 전염돼 장기간 물려지는 부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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