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ㆍ남편도와 독립운동 나서/46년월남… 항상 불우이웃과 함께18일낮 95세로 타계한 문익환목사의 어머니 김신묵여사는 고난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의 흐름속에서 자신보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살아온 선각자적 여성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시부모와 남편 문재린목사(85년작고)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면서 직접 항일투쟁에 나섰고 해방후에는 역대 독재정권과 맞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전개해온 남편과 장남 문익환목사(72)의 외로운 투쟁의 정신적 지주로서 말못할 역경을 감내하는 인고의 삶을 살았다.
끝내는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초석이 되고자 지난해 비밀방북으로 영어의 몸이된 장남의 석방을 기다리다 눈을 감았다.
1895년 4월5일 선비 집안의 김하규ㆍ김윤하씨를 부모로 함북 용성군에서 태어난 김여사는 4세때 부모를 따라 간도로 이주,간도일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와 주변의 영향을 받아 어린시절부터 항일에 눈을 떴다.
용정의 배신여자성경학원에 입학한 1914년 학교동료 임베베ㆍ정신태와 더불어 조선인애국부인회에 가담,간도일대의 한인사회를 무대로 항일정신을 고취시키는 한편 독립운동자금 모금운동도 전개했다. 굳건한 신앙심에 바탕을 둔 그의 항일정신은 평생의 동반자 문재린목사를 만나면서 더욱 굳어졌다.
남편 문목사가 일제헌병대와,해방후 북한공산주의체제에서 모두 4번이나 붙잡혀 옥고를 치를때도 신앙에 의지해 모든 고난을 딛고 일어섰다.
공산주의체제의 탄압을 피해 46년 월남해서도 문재린 김신묵부부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전쟁의 시련기에는 목사부인회를 조직,피란민들의 생활을 도왔고 전선의 군인들을 위해 「내의 만들어 보내기운동」도 했다. 물질이란 선하게 쓰고,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신념속에 언제나 가진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을 기쁨으로 알았다.
김여사는 유신시대인 78년말 캐나다 거주당시 남편이 한국의 인권상황을 비판하는 설교로 귀국길이 막히는 바람에 한해 먼저 귀국했다 헤어져 살아야했다. 귀국금지조치가 풀려 노부부가 재회하게된것은 3년뒤인 81년4월이었다.
고국에 돌아온 노부부는 해방전까지 반세기가까이 살았던 간도생활의 체험과 독립운동에 관한 증언을 녹음테이프에 수록했고 그 내용의 일부를 85년 계간 「오늘의 책」여름호에 공개하기도 했다.<이기창기자>이기창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