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수재의 아픔을 나누며 복구에 여념이 없는 이때 엉뚱한 곳에서 또 일이 터졌다. 3성장군 출신으로 5ㆍ6공에 걸쳐 장관 등 고위직을 역임해온 김용휴씨가 사장으로 있는 국영기업 남해화학의 사장아들 어음지급보증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한마디로 혐의내용이 고약해 국가적 재난 속에서 모처럼 형성된 국민적 일체감에 흠집을 줄 우려마저 있다. 정부는 철저한 수사와 정직한 뒷마무리로 세간의 의혹을 없애고 국영업체 경영의 기강을 확립하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을 촉구한다.우리가 이 사건의 질이 나쁘다고 단정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들이 있다. 이 사건은 3공부터 6공에 걸쳐 특혜와 특권을 누려온 대표적 계층의 사회지도층 인사가 공과 사를 구별못할 정도로 도덕적으로 타락되어 있음을 은연중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특혜계층의 이같은 타락은 윗물부터 탁해 있는 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비리라는 비난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어서 할 말을 잃는다.
사건이 터진 후 김씨가 당국의 귀국종용을 거부한 채 사건의 책임을 아래실무자에게 돌리려고 한 몰염치한 책임회피의 부작용도 두렵기만 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국영기업을 개인이나 가족을 위한 회사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비전문 낙하산 경영인의 오만한 자세 또한 꼴불견인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도층과 당국에 몇가지 고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째는 나눠 먹기식 인사관행에서 이제는 과감히 벗어나라는 것이다. 전문영역과 능력을 무시한 낙하산 인사가 부정과 방만과 타락의 씨앗을 뿌린 결과를 우리는 한두번 본게 아니다. 출신계층이나 지연ㆍ학연에 따른 정실인사가 나라나 사회는 물론이고 지도계층에게까지도 화근이 될 수 있음도 새삼스러운 교훈이 아니다. 인사는 만사라는데 사람을 잘못 써놓고 일이 터진 뒤에라야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식으로 땜질통치를 해서야 백년하청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두번째는 이번 기회에 국영업체의 운영을 철저히 재점검,방만한 운영을 끝장내야 한다는 점이다. 국영기업은 흔히 공익적 성격이 강한 거대한 독점기업인데 지금까지 그 경영은 반대로 부실과 방만의 대명사였다. 그 이유는 부패한 독재권력일수록 국영기업을 마치 논공행상의 대상인듯 여겨 인사나 운영ㆍ감독을 허술히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24개 정부투자기관의 사장중 25%,이사장중 35%가까이가 군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국영기업의 막대한 자금은 정ㆍ재계에서 큰손노릇을 하게 마련이어서 말썽이 끊이지 않았지만 임명권자와의 특수관계가 방패막이 구실을 해 감독을 철저히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세번째 고언은 정부가 펴고 있는 특명사정의 방향과 근원적인 개혁에 관한 것이다. 사정반이 유례없는 재난 속에서 국민적 일체감을 해친다는 이유로 골프장 출입자나 점검하는 등 겉에 떠있는 현상만 뒤쫓고 있는 사이 뿌리깊게 구조적으로 곪아버린 이번 사건이 터졌음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정과 개혁은 일이 터진 뒤에 그 꽁무니만 쫓을 게 아니라 평소 일상적인 업무의 간단없는 점검과 원칙확립을 통해 잡을 것은 잡고 세울 것은 세워야 함을 새삼 절감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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