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북한을 20여일간 취재하고 돌아온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기자는 『전 세계에서 북한처럼 정부가 하는 일,최고통치자의 동정이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라고 혀를 찼었다. ◆물론 북한은 김일성의 동정을 노출시킬 때가 있다. 외국국빈접견이나 현지지도 등에 나설 때는 모든 선전기관들을 총동원하여 PR에 열을 올린다. 이같은 경우 외에는 일체 알리지 않는다. 이따금 1∼2주일에서 한두달 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중병설과 내부혼란설이 난무하곤 한다. ◆지난 40여년간 30여 차례의 해외 나들이를 했던 김은 외국방문때마다 두가지 원칙을 고수해오고 있다. 즉 특별한 때 이외에는 출발방문귀국 때까지 일체 비밀에 부치는 것과 비행기공포증으로 거의 기차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김이 출발전 일정을 처음으로 발표한 것은 75년 4월 중순 중국방문 때였다. 때마침 월맹의 총공세로 사이공함락이 임박한 것과 관련,남한 적북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공개리에 여행에 나선 것. 그는 북경 당국이 베푼 환영연에서 『남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나면 남한 인민을 적극 지원하겠다. 전쟁이 벌어지면 없어지는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얻는 것은 통일 뿐』이라고 호언하기도 했다. ◆이붕 중국총리에 의하면 김은 80년대 들어 매년 중국을 방문했으나 거의가 유쾌하지 않은 나들이였다는 소식이다. 동구공산제국의 대변혁에 놀라 작년 1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등소평 등으로부터 「세계청년학생 축전에 50여억달러를 쓴 것은 낭비아닌가」 「개방과 개혁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라는 등의 핀잔과 따끔한 충고를 들었다는 뒷얘기다. ◆김이 10개월 만에 비밀리에 또다시 중국을 다녀왔다. 더구나 방문지가 북경이 아닌 만주의 심양이어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한소수교와 한국의 유엔가입움직임 등에 속이 탄 김에게 중국이 어떤 반응과 충고를 했는지는 일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비밀방문귀국 후 5일1주일 뒤에야 나들이를 밝히는 게 관례지만 환대나 선물은 없었지 않나 하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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