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각 건설부장관께.지난번 남북총리회담을 모두가 역사적이라고 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만남의 화두중 하나가 장관 소관에 관계된 것이었음은 장관도 기억할 줄로 압니다.
원래가 서먹한 자리의 말머리는 날씨가 가장 무난하다고 합니다. 장마끝의 총리회담에서 우리쪽 강영훈 총리가 북에서 귀빈이 오니까 오래끌던 비도 멈추었다고 첫인사를 한 것은,그래서 자연스런 덕담이었던 것입니다. 북의 연형묵총리가 대동강하류 남포갑문에 언급하고,강총리가 한강상류에 댐을 여럿 쌓아서 지금은 물난리 걱정이 사라졌다고 한 것도,다 그런 범주에 든다고 할만 합니다. 하지만 분단 45년만의 총리회담이라,듣기 따라서는 무난한 날씨에도 언중유골,남북이 그 사이 치수ㆍ치적을 겨루는 듯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두 총리가 주고 받은 이 대화의 내용을 신문에서 읽으며,약간의 감회가 없지 않았습니다. 꼭 18년전 이맘때쯤,첫번 남북적 평양회담을 위해서 우리 대표단이 처음으로 휴전선을 넘어갈 때의 첫 화제도 물난리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우리 대표단은 사망자 3백명이 넘은 대수해속에 길을 떠났습니다. 판문점에서 평양에 이르는 길도 군데군데 수해를 응급복구한 자리가 역연했습니다. 그런데도 북의 안내원들은,「수령님의 교시」를 따라 치수를 잘 했기 때문에 북에는 수해가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연총리의 남포갑문 자랑도 사실은 좀 미덥지가 않았습니다. 남포갑문이 큰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70년대들어 북에서 강행한 산지개간이 잘못돼서,거기서 흘러나온 토사가 북의 하천들을 황폐케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근래에 밝힌 전 원산농대 강사 이우홍씨(재일동포)는 그의 책 「가난의 공화국」과 「어둠의 공화국」에서 산위 옥수수 밭에서 흘러 내린 토사가 댐을 메워 발전이 여의치 않으며,강가 논밭이 묻혀 곡물생산이 격감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대동강에도 모래톱이 늘고 있으며,남포갑문과 그 앞바다가 모래에 묻힐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옳다면,물난리 걱정이 없다고는 못할 형편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한강에는 그런 걱정이 없습니다. 적어도 3천몇백억원을 들인 개수공사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말입니까. 북의 귀빈이 돌아간 며칠 뒤,단 며칠 호우로 한강둑이 무너져서,세상이 발칵 뒤집힐 물난리를 우리가 겪고 있으니. 무안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난리를 장관은 기록적인 강우량 탓이라고만 생각합니까. 심심찮은 인책론은 그래서 전혀 까닭없는 것입니까.
나는 일산둑은 무너질만 해서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내 물난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이미 신문에 소상합니다만,건설부의 이른바 항명사건이 이번 난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 기강을 가진 물정부가 물난리를 겪는 것 또한 당연한 것 아닌가푸념이 절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인책론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두가지 일을 장관에게 부탁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첫째는 지금의 재해대책 체제가 온전한 것이냐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장관은 이번에 풍수해 대책법에 따른 재해대책본부장으로서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경험에 비추어 우리 재해대책의 법적ㆍ제도적 장치가 합당한지,그 장치가 말단까지 잘 구현되고 있는지,실제의 운영은 어떠했는지 등을 되짚어 정책에 반영하는 일이 장관의 의당한 과제로 됩니다. 내가 보기에는 차제에 수해 대책기본법등의 입법작업과 「물」에 관계되는 행정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장관 소견은 어떻습니까.
다음은,지금보다 더 규모가 큰,그리고 서울시나 경기도쯤의 단위를 넘어선 한강개발계획을 시동시키는 일입니다. 그사이 한강상류의 댐 건설,서울시와 경기도의 한강개수작업이 굉장한 것이기는 했습니다만,그 투자는 아직 미흡한 것이고,오히려 겉치레에 치우치거나 잘못된 면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 이 물난리의 결론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의 으뜸은 한강수계를 하나로 보는 안목입니다. 그런 안목이 없었던 것이 일산의 참상을 빚었다고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안목을 가지고 장관이 국가적인 결단을 촉구해야 할 일은 다음 두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한강상류 임계댐(91년 완공예정) 홍천댐 (97년 착공예정) 여주댐 (2000년 이후 착공예정) 등의 완성을 서두르는 일,다음은 경인운하의 건설입니다. 특히 경인운하는 서해시대의 물동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면서도 그 경제적ㆍ기술적 타당성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물난리에 비추어서 한강 전체는 물론 굴포천 일대 부천시등의 물난리대책이라는 측면을 다시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은 예부터 우리나라 제1의 명당으로 꼽혀왔습니다. 그러나 그 건설이 일면 「물」과의 싸움이었음은 시사를 잠시 펼쳐 보아도 알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강유역이 집중호우지대이며 서울이 분지라서 배수가 어려운 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도초에 청계천을 개천했고 그 흐름이 근 6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구실을 하고 있는 사실과 오늘의 거대도시 서울이 겪은 물난리를 견주어 보게 됩니다. 또 그무렵 이미 한강물을 남대문앞까지 끌어 들이자는 용산 운하계획,경인 운하를 파서 삼남으로부터의 주운을 편하게 하고 홍수철의 큰 물이 쉬빠지도록 하자는 계획도 있었던 것입니다. 두 운하계획이 실현을 못본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만,한강의 역사와 한강의 앞날을 생각할 적에 빠뜨릴 수가 없는 일들입니다.
이번 물난리를 겪으며 흔히 인용된 말중의 하나가 「천리둑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진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원전은 아마 『회남자』 「인간훈」에 「천리지제이루의지혈루」라 한 것일 것입니다. 이 이치를 저버린 부끄러움이 지금 우리에게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같은 책은 앞의 인용문을 거의 잇대서 우리가 다잘아는 「인간만사새옹지마」의 고사를 적고 있습니다. 복이 화로 되고,화가 복이된다(복지위화 화지위복)는 그 고사에서 우리는 위로와 함께 교훈을 얻을만도 합니다. 이번 물난리를 앞으로의 물난리를 아예 없애는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것입니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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