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영구주둔 조짐 견제 “엄포”/이라크 잇단 양보에 “사례”ㆍ국내과격파 무마 의도도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가 12일 대미성전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란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견지해 왔던 양비론적 입장을 일단 벗어난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지금까지 페르시아만 위기에 대한 이란의 공식적인 입장은 중립적인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를 촉구하고 범 세계적인 대 이라크 경제제재를 준수할 뜻을 밝히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이 지역에서의 군사력 증강을 비난해왔다.
그러나 12일 하메네이의 연설은 전적으로 대미 비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이전의 입장과 비교해볼때 균형을 잃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미국이 페만에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이란은 용납하지 않겠으며 회교성지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하메네이는 더 나아가 미국이 「레바논의 교훈」을 잊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언급,급진 회교도들의 미군에 대한 테러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여기서 레바논의 교훈이란 83년 친 이란 급진 회교도들이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서 베이루트에 주둔중이던 미해병대본부에 폭탄트럭 자살공격을 감행,2백40명의 미군사망자를 기록한 사건을 말한다. 그 사건은 결국 미군의 레바논 철수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강도높은 대미경고와는 달리 하메네이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야기된 현 페만위기가 아랍인들 자체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이라크의 주장에 동조했다.
하메네이의 대미성전촉구발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하메네이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측은 이라크 대 세계라는 현 대결구도가 이란의 이라크 「가담」으로 와해될 위기에 놓이게 됐으며 사우디아라비아 미군기지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강경 시아파 회교도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지금까지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대 이라크 경제봉쇄에 큰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대미강경발언은 이란이 이라크와 식량 및 의약품공급 협정을 체결했다는 소문을 확인시켜준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이라크라는 양대적을 갖고 있는 이란은 샤트 알 아랍수로의 공유인정등 이라크의 거듭된 양보와 사우디장기주둔 시사 및 나토식 군사기구설치 필요성강조 등 미국의 영향력 확대움직임 사이에서 마침내 미국을 공통의 공적으로 선언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란의 대미성전발언을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있게 대두되고 있다.
즉 페르시아만 위기의 최대수혜자인 이란이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온 이라크에 대해 일종의 립 서비스(Lip Service)를 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란은 이번 사태로 얻은 것만 있을 뿐 잃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라크군이 점령하고 있던 샤트 알 아랍수로의 동부지역을 고스란히 돌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만명의 전쟁포로들이 되돌아왔으며 또한 유가의 급등으로 실리도 챙겼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대미성전을 촉구하고 나선 인물이 라프산자니대통령이 아니라 호메이니사망 이후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종교지도자 하메네이라는 점에 주목을 한다. 아무런 실질적 구속력이 없는 종교지도자의 발언을 통해 궁지에 빠진 이라크에 대해 「사례」를 하고 또한 미국의 군사력강화에 대해 견제를 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을 뿐 이라는 것이다.
이는 또한 라프산자니 대통령정부가 철저히 실리적인 중립노선을 취하는데 따른 국내 과격파세력의 불만을 무마한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이들은 풀이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하메네이의 발언이 페르시아만 지역에 대한 이란의 장기적인 전략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하메네이의 발언을 단순히 대 이라크 및 대 국내적인 효과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미성전촉구는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이후 이라크가 독점하고 있는 대 서방 이슬람주의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의도이며 이번 사태가 어떠한 형태로 결말이 나든 페르시아만 지역에 대한 외세의 장기적 영향력 행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의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하메네이가 대미성전촉구 발언에서 미군의 진주를 허용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비난에 상당부분을 할애한 것도 이슬람권의 주도권을 놓고 대립해 왔던 사우디를 경쟁대상에서 아예 탈락시키려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이상의 분석을 종합해 볼 때 하메네이의 발언이 이란과 이라크가 군사적 동맹관계로 발전할 것이라는 예고로 보기는 힘들다.
균형추가 미국으로 기울어가는데 대해 쐐기를 박고 시간을 벌어 이번 사태로 이란이 얻는 실리를 굳히겠다는 속셈이며 페르시아만 사태 해결이후 이슬람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는게 정확한 지적이 될 것 같다.
페르시아만 사태가 서방측의 의도대로 해결됐을 때 남는 문제는 미국과 서방의 영향력 문제이다. 따라서 이번 하메네이의 발언은 소련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태해결 이후 미군이 페만에 주둔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고 싶어하는 이란의 속마음의 표현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유동희기자>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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