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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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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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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야 어쩌란 말이냐.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법이다. 동양의 전통적 사고는 천재지변이 나면 하늘을 두려워하고,나라를 탓하는 게 관례였다. 오늘의 수재민은 다르다. 아주 침착하다. 절망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정부에 크게 기대지 않는다. 입술이 없이 잇몸으로 살 수 있다는 의지 표현이 뚜렷하다. ◆정치야 어쩌란 말이냐. 천재가 있을 때마다 피해 현장엔 정치인의 얼굴이 나타난다. 재민의 고통을 위로하고 대책마련에 골몰하는 인상을 주고 떠난다. 그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시절은 이미 지났다. 그만한 공치사는 신물나게 오갔기 때문이다. 천재나 지변이나 정치가 해준 것이 무엇인지 따져보면 이해할 만하다. ◆정치야 어쩌란 말이냐. 이제 터놓고 말하자. 재난의 현장엔 모든 국민의 마음이 슬피슬피 울며 달려간다. 정치인이 국민의 대표인체 하지 말며 근신하는 게 오히려 고마울 것 같다. 대책을 세우라,피해를 줄이라,이만하면 다행이다 하는 소리를 누구는 못하겠는가. 피해복구과정에서 정치는 오간 데 없고 행정력이 만능으로 동원될 것이 뻔하다. 이 틈바구니에서 세력있는 의원들의 지역구만 혜택을 더 누린다는 구설수만 요란하다. ◆정치야 어쩌란 말이냐. 이 이상 정치가 더 무력하다면 수재민들은 스스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급하면 급한 대로 목청이 큰 사람만 살아남는다면 그밖의 사람들의 절망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엄청난 수재가 난 가운데도 노조와 학생들은 계속 폭발할 듯 열기를 뿜어낸다. 이런 게 두루 정치무력 탓이라고 한들 반론할 근거가 빈약하다. ◆정치야 어쩌란 말이냐. 언제까지 똑같은 반복음만 내면서 세월을 보낼 것인지 분명한 대답을 듣고 싶다. 버티고 있으면 국민의 한 표가 자기 것이라는 자만은 시대착오의 생각이다. 정치가 지금처럼 표류하면 국민의 뜻은 뻔하다. 세상 무서운 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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