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승계ㆍ경제난에 심한 외압/「남조선 해방」포기등 장기론 변화불가피이번 제1차 남북 고위급회담을 지켜본 많은 관계자들은 북한이 과거와는 달리 진지하게 회담에 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제안들은 종전의 입장과 달라진 것이 없으나 회담태도는 상당히 유화적이고 성실한 모습이었다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말해 북한이 무언가 변화를 모색하는 듯한 징후를 느꼈다는 것이 정부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북한은 과연 변화할 것이가. 변화한다면 어떤 속도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것이 오는 10월 2차 평양회담에 이은 향후 고위급회담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북한은 현재 대내외적인 조건상으로는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궁지에 몰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우선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있다. 외화부족으로 수십억달러의 차관과 수입물품대금 등 6백억엔상당의 대일채무를 갚지 못해 서방제국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는 북한재산의 차압위기를 맞고 있다. 또한 소련이 내부적인 경제개혁 필요성과 대북압력의 일환으로 북한에 경화결제를 요구하고 있고 원유등을 종전보다 훨씬 높은 가격인 국제시세대로 수출하려 하고 있다.
이같은 대외경제여건의 변화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군비중심의 중공업체제에서 빚어진 산업구조의 불균형으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경공업의 해」를 지정하는 등 생필품 생산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이러한 경제난에 따라 우리측과의 군비경쟁에도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8대 1이상의 GNP차이가 향후 남북한의 군사력을 역전시킬 가능성이 크고 이를 막기 위한 군비증강은 북한의 경제난을 더욱 심화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경제난과 함께 북한체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동구사회주의 국가의 변혁에 따른 개방사조의 유입인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내부에도 이미 상당량의 외부소식이 전해져 있으며 북한은 남한이 「헐벗고 굶주린다」는 선전을 더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 우리측의 북방외교 성공에 심대한 외교적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북한은 최근들어 우리측에 「내부 문제를 밖에 들고 다니지 말라」도 계속 경고하고 있으며 연형묵총리는 고위급회담 기조연설에서 『북한은 남측이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 승공통일을 하려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위기감을 털어놓았다.
우리측이 소련과의 관계정상화를 눈앞에 두고 있고 중국과도 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적극적인 관계개선을 모색함에 따라 북한은 더욱 초조해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대내외 여건외에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또하나 절박한 과제는 권력승계문제이다. 현재 김일성김정일의 권력승계구도는 최근의 정세변화로 인해 다소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이같은 대내외적 어려움때문에 이례적으로 제7차 노동당 대회를 10년이 넘도록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당대회를 통해 중요정책기조를 정하고 있는 북한은 지난 80년 10월 6차대회이후 아직까지 7차 대회의 개최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어 북한이 처해있는 난국을 짐작케 한다.
우리측은 이같은 배경아래 북한이 체제붕괴를 피하기 위해 어떠한 형태이든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다소의 개방을 시도할 것이고 이에 대비해 체제의 유연성을 확보하려 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따라 북한은 대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또는 그 결과로서 남북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한국을 실체로서 인정하고 궁극적으로 「남조선해방」논리를 포기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로선 갑작스러운 변화를 단행할만한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 혁명 1세대들이 아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다 「남조선 해방」 논리는 아직도 유효한 사회통제의 기본이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실질적으로 변화를 모색하더라도 표어로서의 「남조선 해방」이나 「하나의 조선」논리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측은 북한의 이러한 내부사정을 감안,북한이 사실상 대남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하고 상호체제인정으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을 계속 유지ㆍ발전시킴으로써 북한이 기존 대남논리를 사문화하도록 유도하되 명분마저 당장 포기하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측은 앞으로의 고위급회담등에서 북한이 보다 실질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일 때 신뢰가 형성되고 구체적인 의견접근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북한측에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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