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 국무 “나토형 기구 추진”/유럽 평화정착 따라 페만군사 비중 격상… 지역주도권 절실/이라크식 패권주의 우려ㆍ사우디 등 왕정국가 이해도 맞물려탈냉전 이후의 새로운 분쟁 양상으로 규정되고 있는 페르시아만 사태 해결방안이 여러 각도에서 검토되고 있는 가운데 미군의 중동 영구주둔 불가피론이 제기돼 주목된다.
그러나 이 미군의 「중동 영구주둔 계획설」은 당초부터 미국이 정면에서 주장하고 나온 「불가피론」이 아니라 아랍국가들쪽에서 제기된 미국의 「영구주둔 기도설」의 성격이 짙다.
전통적으로 반미성향이 강한 아랍국가들은 이번 사태를 기화로 미국이 중동지역 주도권의 완전장악을 통한 자국이익 극대화를 위해 미군을 영구주둔시킬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미군의 사우디파병때부터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의구심이 서서히 현실로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임스ㆍ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지난 4일 하원외교위 청문회에서 『중동의 전반적인 안보구조와 힘의 균형에 관한 분명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전제,이 지역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군사기구를 창설할 것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덧붙여 이 지역안보기구에 미 육해공군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미군의 중동 영구주둔이 단순한 「설」만이 아님을 드러냈다.
여기에 한술더떠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2만5천명의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구체적 숫자까지 제시하고 있다.
타임지는 이 지역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인계철선」으로서 미군 2만5천명 정도의 영구주둔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지난 이란이라크전 동안 미국이 사우디와 합동으로 사우디 영내에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구진지를 구축했다는 일부 주장과 관련지어 보면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10만명이라는 수치에서 현 사우디 병력 7만5천명을 빼면 바로 미군주둔 숫자 2만5천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의도하는 영구주둔의 배경과 속셈은 무엇인가.
우선 ▲이라크의 패권주의에 의한 불안요인 ▲군사적 균형의 붕괴 ▲혁신공화 대 수구왕정제의 갈등노출 등과 함께 나토의 군사적 지위상실에 따른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치재고라는 미국의 이익을 꼽을 수 있다.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미국은 이번 기회에 이라크에 대한 철저한 무력보복으로 그힘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더라도 이미 중동지역의 힘의 안전판이 흔들리기 시작한 이상 미국의 주도권 유지를 위해 이 지역에 계속 주둔할 생각인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군사적 팽창주의에 당황,미군을 직접 파견한 외에 사우디ㆍ이집트 등에 대한 「군비지원」을 강화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그결과 비교적 안정구조를 지녔던 중동의 세력균형은 깨져버린 것이다.
사실 미국이 힘의 균형을 깨면서까지 고육지계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야말로 그동안 미국의 대 아랍정책이 얼마나 「절름발이식」이었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중동국가중 미국의 최대우방인 사우디는 「검은황금」으로 이룬 부를 바탕으로 매년 예산의 40% 정도를 국방비에 투입, 아랍권의 맹주자리를 지켜왔다. 올해만도 1백38억달러에 달하는 국방비의 대부분을 미국산 무기구매에 할당,초정밀 조기경보기 AWACS를 비롯해 최신예 전투기와 탱크로 무장,병력의 열세에도 불구,소수정예 군사강국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막상 뚜껑이 열리자 그동안의 허술함이 그대로 노출됐다. SU24 펜서 전폭기ㆍ미라주 F1 전투기 등 탁월한 이라크 공군력으로부터 사우디의 「심장」인 유전ㆍ정유시설을 방호할 방공망체계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맞공격」을 퍼부을만한 탄도미사일ㆍ전폭기 등도 극히 제한돼 있었다. 즉 맹주로서의 「국력과시용」 무기는 들여왔을지 몰라도 주변국을 침공하거나 공격을 억지할 무기체계는 극히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이스라엘의 철저한 미 의회 로비탓이라는게 중동문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병력상 압도적 우세에 있는 주변아랍권을 월등한 공군력으로 상대해야 하는 이스라엘로서는 현재 친미 온건노선의 아랍국이더라도 언제 「아랍민족주의」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탁월한 대미 로비능력으로 각 아랍국마다 「허점」을 만들어 왔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 의회는 행정부의 사우디 무기판매 승인요청을 번번이 거부함으로써 사태발발전 사실상 1대10 이상의 차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미국은 의회가 보류하고 있는 F15 전투기 10대의 판매를 허용한 외에도 추가의 군비증강을 지원했으며 다급한 사우디도 미국외에 중국의 실크웜 미사일을 사들이는등 무기구매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미국은 또 친미 이집트에 대해서도 역시 10억달러 상당의 전투기ㆍ대 전차무기를 서둘러 지원했다.
이에 따라 중동에는 사우디와 이집트 등 또다른 군사대국이 출현할 기미다. 미국등 서방은 지난 이란이라크전에선 회교혁명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이라크의 등을 떠밀며 지원했다가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데 언제 또다시 「제2의 후세인」이 등장,같은 상황을 반복하게 될는지 그 가능성마저 점쳐지는 상황이다.
지역의 세력균형을 위해 집단안보기구가 필요하며 여기에 미국도 참여해야 한다는 미국의 구상은 이같은 배경을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하나는 이번 사태해결후 아랍권질서가 재정비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힘의 공백상태를 지역안보기구가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랍권의 결속을 위해 덮어두었던 공화정 대 왕정제의 대립구도가 이번 사태로 표면화됐고 사태해결 후에도 그 파장은 계속될게 분명하다.
후세인 대통령이 아랍권 일부에서 「제2의 나세르」로 비유되고 있는 것처럼 현 상황은 이집트의 공화혁명후 이라크ㆍ시리아ㆍ예멘 등이 차례로 유혈왕정타파에 성공한 지난 50,60년대의 양상을 반복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아랍의 민주공화제가 전근대적인 일당독재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민주화가 동구권을 비롯한 전세계적 추세인만큼 후세인이 제거되더라도 그 기운은 여전히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이같은 체제간의 대립구도에 이번 사태로 돌출된 빈ㆍ부국간의 갈등까지 가세되면 아랍권 내부의 질서는 보다 복잡하게 얽히며 이합집산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같은 대립이 기정사실화된 이상 그동안 미군의 주둔을 표면상 꺼리던 사우디 등 페만협력기구(GCC)내 왕정부국들도 이를 요청해야 할 입장이 되고 말았다.
한편 미국으로서는 설령 이런 배경이 없더라도 페만 주둔이 싫지 않다는 입장이다. 탈냉전 분위기로 나토의 군사적 지위가 약화되고 있는 마당에 유럽과 인접한 중동의 군사지정학적 위치는 보다 강화됐기 때문이다. 페만의 영향력 확보는 미 국익에 관한한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거북한 존재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미국과 미「이」관계에 대해 천성적 거부감을 지닌 아랍국간의 군사협력체제가 제대로 상사될지는 현단계에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미군의 영구주둔 움직임이 아랍인들의 반미 감정에 불을 당겨 중동이 「제2의 베트남」이 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만은 없다.
아랍권 일각에서는 페만사태 발발초기 미국이 이라크군의 이동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군의 중동주둔 명분을 쌓기 위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모른체 했을지 모른다는 의문을 가졌었다.
미국이 사우디에 고가의 조기경보기 AWACS를 제공한데 대해 『「불이야」하고 소리치기만 하면 소방수(미국)가 어서 빨리 달려가기 위해서』라는 비아냥이 나왔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렇게 볼때 미군주둔이 중동의 불씨를 완전히 제거하는데 최선의 방안인지는 좀 더 검토돼야 한다는게 중동전문가들의 지적이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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