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평양을,남달리 비극적인 상황속에 오고갔던 나에게 있어 통일은 바로 『내가 설 땅은 어디냐』의 회답이기도 하다.지난 1972년 7ㆍ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당시,나는 내리 사흘동안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모처럼 꿈에 안보이던 어머니가 사흘동안 계속 꿈에 보여서 이상히 여기고 있는데 바로 그날 7ㆍ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나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은 8ㆍ15해방후와 같은 들뜬 분위기속에 곧 통일의 길이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부푼 기대감으로 가슴을 설레곤 했다.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적십자회담에 대한 보도가 TV를 통해 방영되었을 때,나는 실로 오랜만에 언니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어쩌면 언니를 비롯한 동생형제들을 한번 만나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기대나 믿음은 희박했다.
냉철히 생각할때 통일은 생각이나 감정이나 소원만으로 이루어지는 환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일은 어디까지나 남과 북이 대좌하여 실질적인 합의를 이루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8ㆍ15해방후 남쪽이나 북쪽이나 분단된 어려운 여건속에서 저마다 자기체제를 구축해 왔다. 그리하여 남쪽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반면에 분배구조의 모순에서 취약점을 안고 있고,북쪽은 과학문화생활에서 뒤지고 있으며 경제가 낙후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이 서로 합의를 이루려면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아파하는 상호신뢰의 구축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서로 불신하는 바탕위에서 이루어지는 남북대화가 원만하게 풀릴 까닭이 없는 것이다.
한쪽이 다른쪽을 이기는 통일을 고집하게 되면 민족을 죽이는 통일이 된다. 이기고 지는 통일이 아닌 민족이 함께 사는 통일이어야 한다.
그동안 북에서는 하나의 연방정부가 이루어지면 그 정부 아래에서 민족사회를 하나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해왔고 남에서는 민족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민족통일 우선론을 지켜오고 있다. 이루기 어려운 국가연방만 논의하다가 허송세월하는 것 보다는 인적교류부터 합의해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의 국가연방제 우선론과 남의 실질관계개선 우선론이 맞서서,그동안 남북은 한치의 진전도 없는 대화만을 수십년 계속해왔다.
이번에 남북한은 역사적인 남북 총리회담을 모처럼 갖게 된 것을 계기로,정치 군사문제 논의를 통하여 서로 남북이 전쟁도발의사가 없음을 확인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군사적 신뢰구축의 필요성을 외면해온 북한이,지난 5월31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축안」발표를 통하여 그 필요를 수용하는 듯한 신축성을 보인 것은 고무적이었다.
이번 서울에서의 1차 남북 총리회담에 이어 10월 평양에서의 2차 남북 총리회담을 통해 남북이 「남북공동 군사위원회」를 설치하고,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군고위당국자간의 직통전화 가설등이 이루어 질 수 있게 되어 남북간의 군사관계 개선을 위한 좋은 시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무엇보다도 우선,모든 남북교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려면 남북간의 정치 군사적인 대결상태가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이미 제시된 「3단계군축안」에서도 우선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점은 신뢰구축이다.
지난 5일 남북 고위급회담의 기조연설을 통해 강영훈 총리가 밝힌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방안」은 우리 정부가 내놓은 최초의 종합적인 군비통제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군비통제안은 앞으로 군사문제를 다루는 남북의 대화에 임할 우리쪽의 기본입장을 공식화 한 것이다.
연형묵 총리가 밝힌 북한쪽 군축안은 지난 5월31일 내놓았던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을 밝힌 것으로 이 군축안 역시 북쪽의 공식 입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통일을 논할 때 동서독의 통일을 예로 들고 있지만 독일과 우리는 모든 면에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섣불리 서둘지말고,흥분하지말고,냉철하게 이성적으로 통일의 길을 여는데 꾸준한 인내로 임해야 할 것이다.
나는 누구못지 않게 평양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중의 한사람이었지만,이때까지 한번도 평양방문신청을 해본 일이 없다. 남들이 너도 나도 신청을 하는 그 광경을 한켠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남모르는 한숨과 함께 우리민족의 비운을 슬퍼할 뿐이다. 동서독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 순간의 광경을 TV로 보면서,나는 환호보다도 웬지 슬픈 마음으로 우리 민족의 통일의 그날을 남모르게 기원해 보았던 것이다.
*작가 허근욱씨는 지난 48년 월북해 북한 최고인민회의의장을 지내기도 했던 허헌의 둘째딸로,6ㆍ25직후 월남,간첩죄로 구속되는등 분단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어 왔다. 글 앞부분의 「언니」는 남북적십자회담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던 허정숙.〈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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