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깊은 골」인내로 메워야”/쌍방 인정ㆍ명확한 입장제시만도 성과/「신뢰구축」단계 시작… 실망할 것 없어/북 자존심ㆍ경직성이 문제… 변화바람 불가피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서울서 분단 45년사상 처음으로 열렸던 남북고위급회담서 10월 평양 2차회담이 합의됐고 가까운 시일내 이산가족 방문등을 다룰 남북적십자회담을 재개키로 하는등의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남북대표들은 북측의 군사ㆍ정치문제 우선해결과 남측의 교류ㆍ경협등 쉬운 문제부터 접근하자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 군축ㆍ유엔가입문제등엔 이견을 좁히지 못한채 평양회담으로 넘기게 됐다. 이번 회담에서 나타난 양측의 주장과 앞으로의 남북관계개선등의 전망에 대해 북방교역증진을 위해 중ㆍ소 등을 수시로 방문하고 있는 이필곤씨(삼성물산사장)와 북한문제전문가 전인영교수(서울대)의 대담을 통해 정리해본다.【편집자주】
□대담자
이필곤 <삼성물산사장>삼성물산사장>
전인영 <서울대교수ㆍ북한학>서울대교수ㆍ북한학>
▲전인영교수=이번 회담의 의의는 언론등에서 많이 지적했듯이 「45년만의 남북 첫 공식대좌」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북한으로서는 지난해부터 몰아친 지구의 민주화대변환의 바람에 남북대화에 나선 것이고 우리로서는 경제발전으로 인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제 북한과 어떤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경협 필요성도 작용
▲이필곤사장=북한으로서는 세계의 이목을 의식한점외에도 실질적인 남북경제협력의 필요성도 회담에 나오게된 배경이라고 봅니다.
북한경제의 대외연결고리가 소련 동구등이었는데 이런 나라들이 변해 북한은 대외무역이나 외채부담등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아직은 자본주의적인 매매와 장사는 하지 않으려 하지만 지난달 중단됐던 평양의 1백5층 유경호텔 마무리공사와 관리업무까지 홍콩회사에 일임키로 했다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으로 보아 엄청난 태도변화라고 봅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경협문제가 남북대화에 중요한 이슈가 되리라 봅니다.
▲전교수=「자존심」문제는 북한의 대남정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번 회담에서도 실질적으로는 「총리회담」이지만 공식명칭을 「고위급회담」으로 고집했다든지 연형묵총리가 지난 4일 만찬석상에서 강영훈총리를 굳이 「수석대표선생」으로 표현한 점등도 그 일종입니다.
이것은 경제교류에서도 많이 나타나는데 남북간접교역이 우리측 신문에 발표되면 교역을 중단하든지 연기하는등의 반응이 나옵니다. 현대의 금강산개발사업을 합의해 놓고도 일본신문에서 「무상공여」라고 보도하자 즉각 이를 거부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점에서 북한측과의 대화태도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사장=흔히들 남북경제협력이나 경제교류를 우리측 경제력이 우월하니까 북한을 도와주는 입장에서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윤동기」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경제보완의 측면에서 봐도 북한에는 공산품보다는 자원이나 노동력이 풍부하고 우리쪽은 첨단기술등이 앞서 있으므로 「시혜적」차원이 아닌 공동협력 또는 북한쪽에서 주장하는 합작투자형태의 경제교류는 양쪽에 고루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이번 고위급회담에서 하나 아쉬운점은 의제가 「남북간의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포괄적인 정치ㆍ군사 문제등에 대한 견해차가 너무 커 경제협력등 실질적인 교류ㆍ협력부분에 대한 논의가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연총리가 제안한 「쌍방체제인정」등은 북한의 대남노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접근하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북한측이 팀스피리트훈련중지,유엔에 단일의석가입,임수경양등 방북자석방등 종래의 주장을 계속한다 해서 실망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명분상으로는 「남한정부를 인정치 않으려 일부러 애쓰는 인상」이지만 총리가 상대방 원수를 방문한 것 자체가 벌써 인정한 것입니다.
○북변화 느낄 수 있다
▲이=북한의 변화는 우선 해외에 나가있는 북한사람들의 태도에서도 느껴집니다. 저는 고위급회담 바로 전인 지난 3일밤 북경에서 돌아왔는데,이번에 중국에 가보니 북한사람들도 많이 나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3년전만해도 북한사람들은 대사관에만 모여있고 외부와의 접촉을 꺼렸는데 요즘은 중국ㆍ동구등지에서도 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태도도 많이 공손해졌습니다.
이번 방중기간중 중국경제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일반적으로 중국은 대만문제가 있어 북한의 「1국2체제」통일방식인 고려연방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한국과의 경제협력때문에 사실은 한반도의 안정을 원하고 있고 이번 남북대화의 진전으로 돌파구가 열릴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6월의 한소정상회담후 올해내로 한소수교까지 예견되고 있지만 실제 무역고는 중국쪽이 지난해 31억달러로 소련의 3배에 달해 경제협력면에서는 소련쪽보다 앞서가고 있습니다.
2차대전후 형성된 동서의 블록이 점차 해빙되고 우리측의 소련ㆍ중국ㆍ동구와의 접근과 교류가 진전됨에 따라 북한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미일등 서방과의 접근은 필연적이라고 봅니다.
▲전=이번 회담에 앞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상이 북한을 방문,김영남 북한외교부장과 회담을 갖고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또 남북간의 군비축소,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93년 아ㆍ태 외무장관회의」개최를 제의하는등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서도록 「공개적인 압력」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련 관영 모스크바 방송이 지난 4일 『한소관계의 정상화는 극동지역의 대결수위를 낮추어 북한에도 유익할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5일에는 『남북한이 제시한 제안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총리가 함께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남북한간 대화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등은 소련의 이번 회담에 대한 시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봅니다.
○단숨에 합칠순 없어
▲이=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통일의 가능성을 외국에서 더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까지 남북대화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데 대해 실망을 해왔기 때문에 미리 기대수준을 낮추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혹시나서 역시나」로 끝나온 남북대화의 경험에 비추어 이번 고위급회담도 큰 진전은 없었으나 10월16일의 평양 2차회담도 있고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상호비방중지,고위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개설,군사연습상호통보 등 공통점들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기대는 가능하리라 봅니다.
분단 45년간 의식구조의 차이가 커졌고 생활방식도 많이 달라졌는데 이를 단숨에 합칠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선 서신왕래,사람왕래,경제면에서의 통상등의 교류와 「같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공동투자사업같은 것을 먼저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전=이번 회담에서 적어도 4∼5항의 공통제안이 나왔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45년간 양측이 제의ㆍ주장해온 것들이 확실하게 정리ㆍ제시됐다는 점에도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대화라는 것이 상대방의 입장을 분명히 알아야 가능하듯이 남북대화도 분명히 입장이 제시되어야 타협과 양보가 가능할 것입니다.
일부 국민들은 실망과 무관심을 보이지만 또다른 측은 2∼3년내에는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오고 95년께는 어떤 형태로든 통일비슷한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 5일 국무총리주최 만찬장에서 북한기자들과의 토론과정에서도 느꼈듯이 북측은 너무 자기주장이 강해 남측의 이야기를 잘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잘못만을 자꾸 지적하면 「그러면 너희들은 잘 했느냐」라고 은근히 울화도 치밀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는 속담대로 통일을 위해서는 참아야 합니다. 북측의 약점을 자꾸 파헤쳐봐야 도움이 안됩니다.
또한 우리쪽도 실질적인 민주화로 정치적 안정을 얻게되면 북한에 많이 양보하고 과감하게 통일정책을 시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는 교류등 기능주의적 접근방식을 내세우고 있지만 앞으로는 북측이 주장하는 정치ㆍ군사문제도 어느 정도 양보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동서독 통일과정도 수십년간의 정지작업이 필요했는데 우리의 경우는 이제 「신뢰구축」단계를 시작한 상태라고 보면 될 겁니다.
○정략적 이용 말아야
▲이=독일통일은 통일이 아니라 서독의 동독합병입니다. 결국 서독의 경제력이 동독을 흡수한 것이고 소련의 경제원조를 조건으로 나토잔류까지 얻어냈습니다.
현재 동독이 개방돼 있지만 서독 기업들이 좋은 조건으로 진출해 서방에서 손을 쓸 수 없도록 만든 것도 좋은 교훈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양쪽의 흡수ㆍ통합은 어렵지만 북한이 실제로 경제침체ㆍ외채부담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인도적 입장에서도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호의를 받아서 싫어할 사람은 없습니다. 정부도 이미 남북교역을 내부교역으로 간주,관세등을 적용치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투자는 결국 우리땅에 남는 것이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를 해도 손해볼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지금이 내외여건상 관계개선의 호기입니다. 항일운동을 했던 김일성 북한주석과 같은 정통성을 갖지 못한 김정일 서기로서는 주민생활향상 등으로 인기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개방과 외자도입은 필연적입니다.
우리측이 만약 정권적ㆍ정략적 차원에서 통일문제를 이용하려할 경우에는 시기를 잃게돼 앞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거론된 제안들이 2차 평양회담에서는 더 많은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봅니다.<정리=남영진기자>정리=남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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