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들으며 사태추이에 촉각/철수 여부로 한때 노사마찰도장기전에 들어간 페르시아만 사태는 점차 군사적대결에서 정치적 협상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듯한 조짐을 보이고는 있으나 전면전의 위험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한뒤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있던 많은 한국교민들이 본국으로 철수했으나 그대로 남아 있는 교민들은 생활상의 불편보다는 이러한 전쟁의 위험성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정신적 고충을 겪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남아 있는 교민은 모두 3백70명 정도로 이들 대부분이 건설업체 근로자들이다. 그동안 3백여명이 철수했으며 일반 기업체 주재원과 그 가족들은 전원 철수했다. 쿠웨이트에는 공관을 지키고 있는 10여명이 전부이다.
이라크에 진출해 있는 한국건설업체로는 현대 삼성종합 한양 등이 있는데 이중 실질적으로 공사를 하고 있는 업체는 현대와 삼성.
특히 이라크에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 현대는 알무사이부 발전소공사등 6개 현장에 2백69명이 잔류,전체 한국교민중 8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건설업체들은 서방의 해상봉쇄에 따라 자재공급이 어려워 공사중단사태가 발생,근로자 철수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 건설업체들은 그동안 이번 사태가 악화되면서 철수문제를 놓고 근로자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근로자들은 신변안전을 우려,즉각적인 본국 귀환을 요구했으나 회사측은 한꺼번에 많은 인원을 철수시킬 수 없는 데다 이라크 정부의 허가문제로 이들 요구를 수용하지 못해 여러차례 집단 항의사태가 발생했었다.
이같은 근로자 동요는 이번 사태 초기부터 이라크의 쿠웨이트 외국 대사관에 대한 페쇄명령 시한이었던 지난달 25일까지 특히 심각했다. 한 근로자는 『25일을 전후해서는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며칠씩 잠을 이루지 못하고 초조했다. 근로자들 동요는 바스라항만 공사장등 미군의 공격목표가 될 수 있는 지역에서 특히 심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에 대한 상세한 소식을 접할 수 없었던데다 본국에 있는 가족과의 전화통화로 전해지는 긴박한 뉴스때문에 불안감이 증폭됐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업체가 많이 고용하고 있는 태국ㆍ방글라데시 근로자들도 철수 요구를 해와 회사측과 큰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들어서 사태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근로자 철수가 계속 진행되자 동요사태는 어느 정도 수그러 들었으나 아직도 많은 근로자들이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채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때문에 근로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알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업체는 BBCㆍVOAㆍ한국 해외교포방송ㆍ모스크바방송 등 청취 가능한 모든 방송을 정기적으로 들으며 이를 종합 분석해 근로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한 업무가 되어 있다.
이곳 근로자와 교민들이 최근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문제는 페만에 주둔한 다국적군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 현재 한국인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이라크가 한국이 직접적인 지원을 할 경우 일본인처럼 출국을 중단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슴을 죄며 한국정부의 대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청취되는 외국 방송들도 최근 이 문제를 자주 거론하고 있어 더욱 근로자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교민과 각 업체들이 겪고 있는 실질적인 어려움은 본국과의 연락문제로 지난달 2일 이후 팩스ㆍ텔렉스가 중단된데 이어 최근 해상봉쇄로 서신교환마저 끊겨 전화만이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전화도 본국에서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곳에서 국제전화를 신청,사용하고 있으나 통화가 안되는 경우가 많고 몇시간씩 기다리다 통화가 돼도 금세 끊기곤 한다. 이같은 통신두절은 이곳 교민들에게 심각한 고립감을 주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점차 물자사정이 크게 악화,그중에서 빵 설탕 우유 등 품목은 상점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 건설업체의 경우 2∼5개월분의 식량을 비축하고 있어 별다른 지장을 받지 않고 있고 이라크정부도 이곳에 있는 외국 건설업체에게는 물자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최근에는 부족물자 보급을 위해 근로자 수를 조사해가기도 했다.
또한 이번 사태로 서방 건설업체들이 모두 철수하자 이라크는 한국업체가 계속 남아서 일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현지 업체관계자들이 전했다.
이라크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박희성씨(45ㆍ삼성종합정비반장)는 『생활에는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 이번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가 불안하다』며 『본국에 있는 가족들이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 같아 오히려 걱정이다』고 말했다.〈바그다드=배정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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