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씨름 그만두고 가능한 합의점부터저분들이 바로 북한정부의 대표자들인가. 연형묵 북한총리의 조용하고도 친근감까지 느끼게 하는 미소와 꽃다발을 갖고 마중나온 한국측 어린이를 상대로 뭔가를 취재하는 북측 기자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무시무시한 남북대결의 긴역사를 설명하기에는 걸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평화의 사절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그동안 한반도에서는 못만나는 북한인들을 우연히 외국에서 스쳐 만난 일이 더러 있었다. 리비아사막에서 아파트공사를 하던 북한 건설대원들,눈내리는 스톡홀롬의 가게 앞에서 지나친 북한대사관 직원들,그리고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동구에 퍼진 직후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그곳 북한대사관 앞에서 어정거리다가 맞닥뜨린 대사관 근무자들이었다.
찬바람이 났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데서 왔습니까』 『서울서 왔습니다』,이 세마디이상을 건네보지 못하고 약간은 내동댕이치듯 모두 대화거리에서 멀어지고 말았었다.
남북한 정부를 대표하는 강영훈ㆍ연형묵총리가 3박4일간의 일정을 갖고 만났다. 두 총리는 찬바람나는 비켜감대신 따뜻한 친구,예의를 갖춘 양측 정부대표로 만났다. 이 나라 분단사에 화해를 향한 거대한 획을 그은 것이다.
두 총리가 나눌 회담의 내용들은 양측 정부가 10년,20년,어떤 것은 30년이상을 두고 평행선을 긋거나 거꾸로 달리면서 공방전을 벌여온 것들이다. 군비통제문제,남북교류문제,유엔가입문제 등 어느것 하나 수령점을 향해 의견을 좁혀온 것이 없다. 3박4일간의 회담이 아무리 상호이해적이고 화해적이라 해도 쉽게 그 결과를 낙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강ㆍ연 총리회담은 두가지 문제만은 분명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첫째는 남북한이 극동지역을 비롯한 국제평화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는 더이상 남지않겠다는 결의이다.
연총리가 89명의 수행원과 함께 넘은 그 판문점은 한민족을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대신 전쟁을 사랑하는 나라」,「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족이 아닌 언쟁을 통해 사태를 악화시키는 민족」,「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민족보다는 도끼로 사람을 패죽이는 무자비한 민족」으로 여김받게 해온 오명의 장소이다.
지금 국제이목이 두 총리의 대화장으로 쏠려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시골면장을 서울중앙 TV방송국의 대담프로에 보낸 것만큼이나 가슴을 죄며 그 결과를 주목한다. 이들의 대화를 출신지 시골사람들만 아니라 온국민,다시말해서 온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연총리가 넘은 그 판문점을 다시 강총리가 넘는 가운데 한민족의 이미지는 확실히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평화의 해악요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북한 군사대결 양상을 어떤 면으로든 완화시키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
북한측이 주장하는 10만감군안,한국측의 단계적 군비통제안이 맞서 평행선적인 언쟁만 벌일 것이 아니라 실오라기 같은 것이라도 가능한 합일점을 찾아내 이를 공포해야한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공격무기의 전진배치후퇴 등 쌍방주장에 모순되지 않는 세안같은 것을 진지한 태도로 합일화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흐름이 있는 것이며 지금 세계에 흐르고있는 국제 화해기운을 남북한은 주도하지는 못할지언정 힘을 합해 이에 순응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둘째는 인민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결의이다.
45년의 남북분단은 남북한간에 소시민으로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이산가족문제가 그 하나이다. 사실 가족이 헤어져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헤어진 부모형제의 안부를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고통인가를 알지 못한다.
남북한에 흩어져 있는 이들 이산가족들은 아마도 유명을 달리했거나 곧 세상을 떠날 어른들의 소식을 알기 위해 시각을 다투어 남북대화의 귀추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문제를 정치협상ㆍ군사문제와 결부시켜 『통일이 되면 자연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어떤 확실한 길을 열어야 한다.
지금 한반도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 일본의 혼슈(본주),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거대한 환태평양지역의 신세계에 들어가려 하고있다. 정교한 컴퓨터칩,세밀한 전자공업으로 대표되는 도도한 신국제경제질서이다. 북한은 한국전쟁이후 천리마운동등으로 한때 남한의 경제수준을 능가했고 60년대초에는 『일본을 앞섰다』고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컴퓨터로 대변되는 신경제질서는 인민의 근육과 의지에 기대는 굴뚝산업(철강ㆍ제조업 등)으로는 맞설 수 없다. 그것은 결국 영원한 패배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미주교포는 황해도 해주에 있는 그의 큰형댁을 방문하고 돌아와 『북한이 이렇게 전시대의 암흑세계로 남아있는 것을 통곡한다』고 말한 바가 있었다.
세계는 남북한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고립된 채 천국임을 외친다고 해서 세계가 그 실상을 모를리 없다. 물론 남한도 분배의문제,정의의문제 등 많은 약점을 갖고있다.
남북 총리회담은 이런 서로간의 약점을 스스로 보완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한다.<정일화 북한부장>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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