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가 「블라디보스토크연설」을 통해 『동쪽 창을 열겠다』고 선언한 것은 4년전인 86년 7월이었다. 그의 개방정책이 주로 서방측을 향한 「서쪽창」을 여는 것이었다면,이로써 소련은 일종의 「동방정책」을 선언한 셈이었다.고르바초프는 이어서 88년 9월 크라스노야르스크방문에서 「아시아ㆍ태평양지역 평화안」 7개항을 내놓고,한국과의 경제관계발전에 언급했었다. 한국과 소련의 관계발전,나아가서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조의 완화조짐은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은 일련의 동북아 방문외교와 함께 또다시 블라디보스토크회의에서 소련의 아시아ㆍ태평양정책구상을 밝혔다.
4일 제2차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대화와 평화ㆍ협력회의에서 그가 밝힌 내용은 소련의 다음 단계 아시아정책의 목표를 분명히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소련이 그동안 주장해온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집단적인 안보협의체 구성이다.
셰바르드나제장관은 그 구체적인 일정으로 올가을 유엔에서 관계국과 접촉,9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시아ㆍ태평양지역 외무장관회담을 갖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지역안보협의체의 핵심으로 소련은 특히 미ㆍ소와 일본ㆍ중국의 4개국으로 구성되는 협의체를 구상하고 있다.
이번 블라디보스토크연설을 통해 셰바르드나제장관은 소련이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서도 상당히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겠다는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힌 셈이다.
그러나 소련의 아시아ㆍ태평양정책은 아직 구체적인 윤곽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그 전망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미국이 아직 이 지역에서 유럽에서와 같은 대결 청산가능성에 회의적인 입장인 만큼,소련의 구상은 미국의 소극적 입장을 바꿀 만큼 설득력이 필요한 단계이다.
소련의 「동방정책」은 무엇보다도 한반도정책에서 손에 잡히는 변화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셰바르드나제장관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앞서 평양을 찾은 것도 그러한 인식에서 나왔을 것이다.
셰바르드나제장관은 1일의 하얼빈회담에서 중국측과 『남북한 총리회담에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밝혔고,블라디보스토크회의에서도 남북한의 긴장완화에 대해 특별히 언급했다.
물론 종전의 소련입장을 그대로 지켜 북한측이 주장하는 「콘크리트장벽의 철거」나 주한미군과 핵무기 철거를 언급했고,또한 『군축을 통한 군사적 대치상태의 완화』의 가능성에 언급했다. 기본적으로 소련의 입장은 아직도 「교류」보다는 「군축」이 앞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북측과 맥이 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화와 화해」를 통한 냉전체제의 완화라는 소련의 기본적인 입장은 남북한 고위급회담이라는 커다란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확실하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행해진 셰바르드나제장관의 연설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음을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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