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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형묵총리를 환영함(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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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형묵총리를 환영함(사설)

입력
1990.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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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분단사를 청산할 통일의 가닥이 잡힐 것인가,아니면 또한번 실망과 좌절만을 남길 것인가. 지금 우리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있음을 깊이 자각한다. 동서 화해라는 세계의 진운에 맞춰 통일을 향한 겨레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뜨겁다.오늘 북한의 연형묵총리 일행이 서울로 온다. 한 민족의 마음으로 우리는 그 일행을 어떤 전제나 조건이 없이 따뜻하게 환영할 것이며 정부도 정중하게 맞아들일 것이다.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할 만하다.

비록 체류일정이 짧다는 아쉬움은 있어도 남북한 정부간의 공식대좌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도 이제 세계의 흐름에 뒤지지 않는 자주민족의 역량을 자랑하고 민족적 슬기를 과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한 것이다.

남북한 첫 총리회담을 눈앞에 두고 우리의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자면 기대반 회의반임을 숨기기 어렵다. 애초부터 불신을 깔고 들어가자는 뜻이 아니라 그간의 분단접촉사가 선뜻 낙관을 할 수 없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7ㆍ4공동성명을 전후해서 있은 남북접촉이래 우리는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한순간에 실망으로 변하는 경우를 종종 겪었다. 거리를 한발 좁힐듯하다간 오히려 더 벌어져 안타까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남북관계는 알게 모르게 변화를 거쳐 왔음은 부인못한다.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쌍방 이견과 이질성은 서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쌓인 불신과 배타적 의지 탓으로 「거리」를 좁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남북관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관계개선이나 통일방안이 제시될 때마다 어느 한쪽이 장애요소를 설치하고 감정의 촉발을 돋우는 게 지금까지의 답답한 관례였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과 민족의 자각은 이제 성숙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남북의 노출된 입장과 이견을 정리할 단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갈라진 남북한 민족의 소망은 대체로 압축되어진 것으로 보아 무방할 줄 안다. 동질성의 회복을 위한 상호 배타주의 극복이 선결과제이고,그 다음이 통일 내용의 점진적 접근이 될 것이다. 배타주의와 적대감의 극복은 불필요한 정치선전의 배제에 달렸다. 휴전선의 장벽 철거같은 근거없는 일방적 주장은 적대심만 자극할 뿐 아니라 통일노력의 방해요소라는 것도 자명하다.

처음 열리는 남북 총리회담에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민족의 고통을 줄이고 그 고통을 나눠 갖는다는 책임있는 자세로 임해 달라는 것 뿐이다. 상호 책임을 떠넘기는 구태의연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미래지향의 의지를 보인다면 남북대화는 그것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로 꼽힐 것이다.

남북 총리회담에서 어떤 문제가 어떻게 다뤄지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갈지 지금으로선 예측할 수 없다. 선 신뢰회복이든 혹은 선정치 문제논의이든 길은 통일이라는 데로 모아질 뿐이다. 이 기회에 남북한 정부는 거리낌없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털어놓을 것은 모두 털어 놓기 바란다. 말은 곧 길이 아닌가. 말이 트이면 길은 얼마든지 찾아지리라 믿어진다.

지금은 남북한 쌍방의 의사타진 단계이다. 정상회담의 가능성,이산가족,유엔가입문제,상호왕래,군비통제나 축소 등 모든 문제를 회담장으로 끌어내기 바란다. 이번에 성과가 없다하더라도 다음번을 기약한다는 성의와 끈기의 자세를 이번 총리회담은 보여주어야 한다.

총리회담의 진전을 주시하면서,우리는 남북한 민족이 공존공영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더욱 줄기차게 탐구해 가야할 것이다. 남북한이 사소한 것이라도 주고 받는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서로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동서독의 통일을 가만히 앉아 부러워할 때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전향적으로 움직이면서 이해를 증진하고 아량으로 나서면 남북문제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듯하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하게 전진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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