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반란 반복… 위기관리 터득/측근들 전력 비슷 「운명공동체」/반항자 즉결처분등 「공포」도… 군ㆍ비밀경찰 완전장악사담ㆍ후세인 이라크정권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이라크 전문가들은 「공포」와 「동지적 유대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고 있다. 따라서 서방측이 바라는 이라크 내부로부터의 후세인 축출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후세인의 이같은 통치술은 바로 이라크의 현대사로부터 터득한 것이다.
이라크 현대사는 셰익스피어의 「맥베드」처럼 피로 얼룩져 있다. 지난 58년 군인들이 파이잘 2세 국왕을 저격했을때 당시 총리는 온몸이 찢겨져 거리에 내버려졌었다.
왕정이 붕괴되고 바트당이 마침내 권력을 잡기까지 10년 동안 6번의 쿠데타와 반란이 계속됐고 그때마다 대규모의 숙청이 뒤따랐다. 그후 후세인 대통령도 12차례나 위험스런 순간을 맞아야 했다.
이처럼 피비린내 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 후세인 정권인만큼 「공포」「동지적 유대감」이 마치 거미줄처럼 교묘히 짜 맞춰져 있는게 당연하다.
이라크 권력의 피라미드 상층부는 군장성들과 고위 정치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후세인을 보호하지 않는한 자신들도 후세인과 함께 몰락하리란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 전문가는 진단했다.
후세인이 TV에 등장할때 함께 나타나는 인물은 고위관료와 혁명평의회 구성원 등이다.
이들은 모두 외견상 후세인과 비슷하다. 중년의 나이에 군인복장이며 한결같이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또 대부분은 공통적인 경력을 지니고 있다. 후세인과 같은 고향출신으로 폭동에 가담했다가 추방된 후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것이다.
한 요르단 전문가는 이라크를 「아랍세계의 프러시아(군국주의)」라고 표현한다.
가령 이라크의 내각이 열리면 각료들은 입장할때 후세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떠날때도 발을 모아 고개를 숙인다는 것. 각의에서는 누구도 농담할 수 없고 후세인의 허락없이는 발언도 할 수 없다.
암살과 모반의 위험속에 살고 있는 이라크 지도자들은 이 때문에 몇가지 행동원칙에 익숙해져 있다.
하나는 정규 스케줄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후세인이 22세 당시 총리인 카림ㆍ카셈의 암살을 기도했을때 그는 카셈의 일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비록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배운 후세인은 스케줄을 자주 바꾸고 그의 내실에도 경비병을 세운다. 지난 6월 월스트리트지 기자가 그와 회견했을 당시 그 기자는 볼펜 심까지도 검사를 받았었다.
또 하나는 공개재판은 적을 오히려 영웅으로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카셈총리 암살이 실패했을 당시 이라크는 78명의 가담자등을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있는 태도는 오히려 바트당의 인기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현재는 적들에 대해서는 특별재판이나 비공개 군사재판 등이 적용된다.
해외추방이나 투옥은 당연히 기피된다.
카셈 암살에 실패한 후 이라크를 탈출한 후세인은 망명지인 이집트와 감옥속에서 음모를 계속 키웠었다.
그런만큼 후세인의 반항자에 대한 처분은 즉각적이다. 지난 82년 내각회의중 리야드ㆍ이브라힘 당시 보건장관은 이란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후세인에게 잠시 물러날 것을 건의했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그를 옆방으로 불러 즉결 처분해 버렸다.
후계자를 명확히 하는 것도 금기시되고 있다. 68∼79년 사이 후세인은 바르크에 이어 명목상 제2인자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바르크를 가택연금시키고 전권을 휘어잡았었다.
모든 것들이 바로 후세인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 정권이 「공포」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후세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알바트」(부활이라는 뜻)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정치일생을 시작했다.
이 이데올로기는 80년대 서구에서 교육받은 지식인들이 만든 것으로 아랍통일을 목표로 하는 세속적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인 이념이다.
「알바트」는 한때 의회민주주의를 지지했었지만 현재는 아랍의 가장 강력한 압제국가인 이라크와 시리아를 지배하고 있다.
후세인을 지지하는 아랍인들은 친구를 위해 그 자신까지도 희생하는 「나크나」와 두려움과 존경심을 동시에 나타내는 「하이바」란 단어로 그들의 감정을 표시한다.
후세인 주위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후세인과 그의 정권의 성격이 좀더 분명해진다.
오랫동안 혁명평의회 위원이었고 공보문화장관인 라티프ㆍ자심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의 사무실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우선 자동소총 총부리와 만나게 된다.
그러고도 자심은 권총을 차고 나타난다.
한때 은행원이었다가 69년부터 혁명평의회 위원으로 있는 타하ㆍ야신ㆍ라마단(51)도 유명하다.
그는 암만에서 회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연설할때 『만일 당신들이 우리 정권에 해를 끼친다면 우리는 당신들 목을 부러뜨릴 것』이라고 말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라크ㆍ이란 종전직전 후세인 대통령이 비대한 이라크인들에게 다이어트를 지시했을때 비대했던 라마단이 무려 몸무게를 30㎏이나 줄였다는 사실이다.
현재 이라크의 공식적 2인자인 이차트ㆍ이브라힘도 비슷하다. 후세인 대통령과 동향인 그는 바트당이 정권을 잡기전 그들을 위한 커피숍을 여는 대담함을 보였었다.
그의 딸이 후세인의 아들인 위디와 결혼했다. 현재 위디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은 사위인 후세인ㆍ카멜이다. 그는 군수산업장관으로 이라크의 무기 현대화 및 핵무기 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대로 온건한 측은 외무부. 각료중 유일한 기독교도인 타리크ㆍ아지즈 외무장관은 그러나 실권은 거의 없는 편이다.
어떻든 그 누구도 군이나 바트당,비밀경찰 등의 도움이 없이는 후세인에게 대항할 수 없고,이 모든 기구는 후세인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국민들은 끊임없는 감시를 받고 외부세계 소식으로부터 차단되고 있어 루마니아의 경우처럼 내부로부터의 후세인 제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이상호기자>이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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