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유럽의 탈냉전을 「강건너 불」처럼 방관만해온 동북아에도 냉전체제해체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다. 한국의 「북방외교」와 서울북경사이의 교류,그리고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서울모스크바사이의 교류관계 등 그동안 적지 않게 쌓여온 화해노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이미 본란(8월25일자)에서 지적한 것처럼 1일부터 시작되는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의 동북아 순방외교가 유럽에서와 비슷한 탈냉전외교구상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막되는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대화와 평화ㆍ협력」을 위한 국제회의를 전후해서 그는 중국,북한 그리고 일본을 차례로 방문하게 된다.
이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는 셰바르드나제장관의 평양방문이다. 물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내놓을 소련의 동북아 정책구상,그리고 하얼빈과 도쿄에서 무엇이 논의될 것인가 하는 것도 한반도의 평화와 관련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2일과 3일 평양에서 논의될 소련북한관계야말로 앞으로의 한반도정세에 직접 관련될 것이다.
평양에서 셰바르드나제장관이 무엇을 어떻게 논의할 것인지 딱 잘라 예측할 수는 없지만,큰 테두리는 대충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셰바르드나제장관 자신 순방길에 앞서 가진 일본신문과의 회견에서 『북한방문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대립의 극복문제와 남북간의 대화촉진을 논의할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또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하도록 촉구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사실 모스크바측의 한반도정책은 이미 그 윤곽이 공개된 상태나 다름없다. 서울과의 교류관계를 통해 냉전체제청산을 지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문제는 셰바르드나제장관이 이번 평양방문에서 서울과의 교류를 어느 선까지 밀고 갈 것이고,평양과의 동맹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를 분명해 해야할 단계에 왔다는 것이다.
셰바르드나제장관이 우리측과의 정식 수교를 구체화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또한 소련이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대결이 아닌 화해를 위한 지렛대로 본질적인 전환을 시도하기를 바라고 싶다.
이러한 우리의 기대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 것인지는 아직 단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측이 지금까지 금기처럼 거부해온 우리측과의 공식회담을 4일부터 서울에서 갖기로 합의한 사실은 커다란 변화의 조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쿠웨이트사태를 둘러싼 북한측의 움직임도 북한측이 국제사회에 어느정도 접근할 의사가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북한은 유엔의 이라크에 대한 「금수결의」를 어긴 일이 없다고 밝힌 뒤를 이어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태도변화는 소련의 개혁개방정책 그리고 냉전청산정책과 뗄 수 없는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내부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이상 한반도평화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우려는 여전히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소련과 북한의 평양회담이 평화를 굳히는 방향으로 한걸음 앞설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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