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원칙 고수… 양측 양보없인 평행선/탈냉전후 「미ㆍ소 협력시대」시험대로/미 목표는 중동 장악… 아랍 민족주의가 새 분수령오늘(2일)로 이라크의 전격적인 쿠웨이트 침공이 단행된지 꼭 1개월째가 된다. 이라크의 쿠웨이트합병과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선으로의 대규모 병력집결,미국등 다국적군의 파병과 대 이라크 해상봉쇄 단행으로 정면충돌 일보직전까지 치닫던 페르시아만 위기는 지난달 하순부터 이라크가 잇단 화해제스처를 내비치며 화전양면책을 취함에 따라 전면전 발발 위험성은 상당히 가셔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등 서방국과 다국적군파견 아랍국들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와 쿠웨이트 왕정의 복귀 등 원칙적인 요구사항에서 일보도 후퇴할 뜻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어 이라크의 대폭적인 양보가 없는 한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범세계적인 탈냉전분위기에 일격을 가하고 국제경제질서에 혼란을 야기한 페만사태의 발발원인과 그 전개과정 및 전망을 특파원과 외신부의 지상좌담으로 정리해본다.
이 지상좌담에는 이재승 워싱턴특파원,문창재 동경특파원,사태초기 이집트와 요르단을 취재한 김영환 파리특파원,그리고 요르단을 거쳐 1일 바그다드에 급파된 배정근특파원이 참여했다.〈편집자주〉
사담ㆍ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웨이트 침공을 단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각국이 처한 입장에 따라 상반된 해석이 나오고 있읍니다만.
아랍의 「없는 계층」들은 후세인의 행동을 「로빈후드」와 「나세르」를 결합한 것으로 미화,그를 영웅시하고 있습니다.
과점돼온 석유의 부를 영세아랍국들과 나누자는 것이며 또한 아랍민족주의의 중흥을 목표로 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결국 「돈」에 대한 욕심과 영토적 야심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쿠웨이트 침공 이전에 있었던 이라크의 주장에 주의를 환기합니다. 이라크는 이란과의 8년전쟁 동안에 전비로 얻어쓴 빚을 탕감해줄 것을 요구했고 유가를 배럴당 30달러선으로 인상시키기 위해 쿼타 초과생산을 자제해줄 것을 쿠웨이트에 촉구했지요. 또한 페르시아만으로의 자유항해를 보장받으려는 목적에서 페르시아만 연안 도서를 할양해줄 것을 요구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라크가 어떠한 명분으로 포장하더라도 침공의 직접적인 이유는 「돈」과 「영토」에 대한 야심 때문이라는 것이 미국의 시각입니다.
전쟁발발 원인중 하나가 무엇보다도 이란이라크전으로 도탄상태에 빠져버린 이라크의 경제부흥에 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라크가 내세우는 명분이 아랍권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쿠웨이트에 대한 이라크의 영유권 주장은 그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아랍인들 모두가 공유해야 할 석유부가 부패한 왕정들에 의해 과점돼,결과적으로 식민지적 질서를 온존시켜 왔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아랍의 학자들은 쿠웨이트처럼 왕정을 가진 국가들은 대폭적인 자체 개혁을 단행하지 않는 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진보적 개혁자들에 의해 비슷한 운명을 걷게 될 것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아랍권의 분열을 야기한 것은 형제국을 침공했다는 이유 외에도 이라크의 패권주의적 사태 해결방식이 결과적으로 외세의 개입을 불러 일으키리라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파병을 했음에도 불구,외세개입 없는 아랍인에 의한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입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사태는 냉전 이후의 지역분쟁에 세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를 시험 해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소의 공동보조,냉전시대에 유명무실했던 유엔의 역할증대등이 주목됩니다.
특히 미소의 공동보조는 이라크 대 세계라는 현 대결구도를 완성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유엔 안보리가 5차에 걸친 결의안을 통해 대 이라크 군사ㆍ경제제재조치에 명분을 제공한 것은 냉전시대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로 거부권을 가진 소련과 중국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페르시아만 위기가 탈냉전 이후의 미소 협력시대의 도래를 예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협조속의 이견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련은 유엔의 3차 결의안때까지는 미국측의 입장에 전폭적으로 동조했지만 사실상 대 이라크 선전포고를 의미하는 해상봉쇄조치를 유엔이 추인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기간 난색을 표시했습니다.
이는 페르시아만 사태 해결에 미국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소련의 장기적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됩니다. 소련은 유엔 중심의 해결을 주장하고 있고 무력을 배제한 사태해결을 거듭 천명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련의 자세에 대해서 미국 일각에서는 소련이 「이중게임」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지요.
소련이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초기에 보였던 적극적인 협조 자세에서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선 데에는 미국의 신속한 사우디 병력배치에도 한 원인이 있습니다. 미국이 단시간내에 그렇게 방대한 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집중한 것은 놀랄만 합니다.
불과 한달사이에 페르시아만,홍해 동지중해 등 이라크의 물자가 빠져 나오고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수역에 4개 미 항공모함함대를 배치 완료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 파병된 지상병력은 8월말 현재 10만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태진전은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제국주의 질서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는 이라크의 주장에 설득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소련에는 미국등 서방국이 이라크 침공을 구실로 중동지역에서 잃었던 발판을 굳히려는 속셈에서 「과잉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페르시아만 위기는 탈냉전 이후의 미소 협력체제를 뿌리박는데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이를 일순간에 붕괴시킬 수도 있는 위협적인 측면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태초기 「STOP이라크」라는 동일 목표하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했던 범세계적 대응이 시간이 지나면서 흐트러지고 있다는 측면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한 미국은 궁극적으로 후세인을 권좌에서 끌어내린다는 것입니다. 3천여명의 인질이 붙잡혀 있음에도 무력행사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고 또한 9월말까지 사우디주둔 병력을 25만명까지 늘릴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모의 병력은 단순히 방어적인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충분한 여건이 조성되면 파시즘을 타도했듯이 군사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집트ㆍ시리아 등 온건아랍국들은 이라크의 사우디 침공위협이 미군의 신속한 배치로 감소하면서부터 아랍 자체적으로 해결할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미국과 서방의 독주를 내심 못마땅해 하고 있는 소련과 중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국내 석유수요의 65%를 중동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은 어느나라보다도 당황하고 있습니다. 1ㆍ2차 석유파동때 중동 산유국과 유대강화를 절감한 일본은 그동안 대 산유국 외교에 많은 공을 들여왔는데 일이 터지자 서방국가들과 똑같은 대우를 하니 그럴 수 밖에요.
쿠웨이트 주재 대사관 폐쇄시한이 임박하자 일본이 대사관 직원들과 상사주재원 가족을 자진해 바그다드로 철수시킨 것도 그런 유대관계를 믿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그들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전원 연금당했고 이른바 공헌책이라는 대 중동사태 정책이 미국에 대한 적극 협조 방향으로 굳어지자 남자들은 군사시설에 감금돼 버렸습니다.
거기에 비해 보면 한국인들은 상당히 운이 좋았습니다. 이란이라크 8년전쟁동안 철수않고 공사를 계속했던 과거의 적공이 효과를 본 것이지요. 한국 정부가 비록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범세계적 대 이라크제재에 동참하고 있음에도 불구,아직까지도 한국인의 출국 허용조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암만에서 목격한 것인데 일부 출국자는 그 와중에서도 골프채를 챙겨 왔더군요.
일본의 공헌책이란 것과 관련,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자위대 파견을 위한 헌법 및 자위대법 개정논의 입니다. 몇번이나 똑같은 시도를 했던 일본 정부에 미국측이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한 것은 울고 싶은 아이 뺨때려 준 격이지요. 여론의 반발에 눌려 군사력지원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공헌책 발표 이후에도 개헌논의와 자위대법 등 관련법령 정비논의는 계속되고 있어 우리로서는 방심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바로 그 대목이 미국이 페르시아만 사태를 다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구체적 사례입니다.
적어도 미국의 목표는 유가안정에만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악의적으로 해석한다면 미국은 이 기회를 잽싸게 포착,중동에 확고한 군사기지를 마련했고 이 사우디기지가 1∼2년 사이에는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미국이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것이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미국은 주둔비용 일부를 일본ㆍ서독ㆍ사우디ㆍ한국 등에 분담토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방국이 안보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오랫동안의 주장을 처음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길을 튼 것이지요.
정면 군사적 충돌 위험성은 일단 상당부분 감소되었지만 페르시아만 사태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전망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페르시아만 위기의 양축을 이루는 미국과 이라크는 힘에 의하지 않고 승리를 쟁취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집트,시리아 등 다국적군 참여 아랍국들과 미국이 무시할 수 없는 소련과 중국 등 양 초강대국은 양자의 대결이 전면적 군사충돌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태진전 과정이야 어찌됐든 이번 사태는 「미국의 완전한 승리」를 배제한 가운데 「이라크의 굴복」이 아닌 「후세인의 패배」로 귀결될 공산이 큽니다.
그같은 결론은 물론 우발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겠지요. 미국이 지금껏 누려온 국제적 명분상의 지원을 한순간에 잃게될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감행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라크의 선제공격은 국가의 자멸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경제봉쇄가 90%의 효과를 거두고 있기때문에 이라크의 군사적 굴복이 아닌 후세인의 몰락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페르시아만 사태가 어떻게 결말이 나도 현 아랍의 질서는 대폭적인 변모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정리=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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