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이 발끈했다고 신문에 났다. 텔레비전 심야토론프로의 3김퇴진론이 그 불씨였다.토론에는 5년전 느닷없는 3김 낚시론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김동길교수도 참가했고,이번에도 역시 그가 3김퇴진론의 운을 뗐다. 그러나 5년전과 비교해서,3김퇴진론이 갖는 의미는 사뭇 달라졌다. 3김 제각기의 자리모양이 그러할 뿐 아니라,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도 이전 같지는 않다. 그 때는 3김 퇴진론이 무슨 못할 말 같았으나,지금은 세대교체란 이름의 3김 퇴진론이 정계안팎에 흔하다. 그래서 3김의 「발끈」은 체통없는 것으로 비치고,기껏 퇴진론을 받아친,당국의 음모ㆍ공작설은 신문 가십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잠시 낚시론이 나오던 무렵의 신문철을 뒤적여 본다. 문제의 칼럼 『나의 때는 이미 지났다』가 한국일보에 실린 것은 85년 4월4일. 이에 앞선 2ㆍ12총선에서 신생야당 신민당이 민권승리를 기록한다. 이에 대처하느라 민정당은 노태우대표를 옹립하여 후계구도를 굳힌다. 3월6일에는 정치활동의 전면해금으로 3김이 다시 나선다. 여세를 몰듯,이민우 신민당총재는 전두환대통령의 임기전 퇴임을 요구한다 (3월6일자 일지회견). 3월11일 소련의 안드로포프가 죽고 고르바초프 등장. 16일 김영삼ㆍ김대중의 양김이 회동,야권통합선언. 이에 따라 민한ㆍ국민 양당은 삽시간에 무너지고,정국은 양극화,국회개원 협상은 난항을 거듭한다. 그 한편에서 경제계에는 수출부진 타령이 높다.
이렇게 훑어보면,이제나 그제나,세상돌아감새가 비슷한 것도 같은데,그무렵 양김은 민주화의 영웅이다. 야당의 대통령 하야요구는 있을 법하나,양김의 퇴진은 생각할 수가 없다. 그때 낚시론의 충격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낚시론은 낚시론이란 말의 어감이 풍기는 것과 같은 야유의 글은 아니다.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치에는 문외한입니다. 그러나 역사학도로서는 일가견을 가졌다고 자부합니다』 그 사안을 가지고 「80년의 봄」을 돌아보면서,필자는 『역사에는 반복이 있을 수가 없고,있어서도 안됩니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3김이 퇴진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적는다.
『세분을 놓고… 그중의 한분을 대통령으로 뽑거나,세분이 합의하여… 한 사람의 후보를 내세워 그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화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겠다는 것입니다』그러니 『세 김씨의 시대는 영영 가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 말은 십이분 적중이 됐다. 그러나 「80년의 봄」은 88년에 되풀이 됐고,「세 김씨의 시대」는 아직껏 꼬리를 끌고 있다. 적어도 세 김씨는 역사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3반복ㆍ4반복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듯이 보인다. 하긴 『은퇴하여 낚시질하기 좋은 데를 소개할 수는 있습니다』란 말이 통할 만큼 3김의 귀가 엷을 까닭이 없다.
나는 김교수같은 일가견도 없고,낚시터도 아는 곳이 없다. 기왕 효력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낚시론에 동참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나는 오늘의 3김에게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측이다. 내각제ㆍ부통령제 개헌말고 다음과 같은 나의 개헌사안도 검토해줍시사고 부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사안의 첫째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 있었던 조개껍질추방제도(Ostracism)의 도입이다. 1년에 한번 시민총회에 모인 아테네 시민들은 조개껍질이나 그릇 파편등에 동료시민의 이름을 적어낸다. 그 결과 정족수 이상으로 거명된 사람은 10년을 한정하여 아테네를 떠나도록 했던 제도다. 지나친 세도와 독재자의 등장을 막고,해결못할 정적간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87년의 추태」를 막을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부질없는 낚시론ㆍ퇴진론 따위도 사라질 것이다. 나는 적어도 3김만큼은 절대 「추방」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3김 모두가 이 제도의 도입을 찬성하지 않을까하는 나만의 기대를 갖고 있다.
사안의 두번째는 소환(Recall)제도의 도입이다. 선거직 공무원특히 국회의원이 선거권자의 뜻을 어길 경우,투표로써 소환하는 것인데,구체적으로는 이런 내용이다. 국회의원당선자는 취임전에 사표를 써서 맡긴다. 그뒤 그의 행세가 잘못될 때는 다시 투표를 하고,가결이 되면 사표를 접수시켜 자동해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제도가 있다면 어떨가. 야당하라고 뽑아준 국회의원이 하루 아침에 여당의원으로 변신했다가는 모조리 소환당할지도 모른다. 법률안 날치기에 격분한 국회의원은 소환을 요청하여 선거구민의 의향을 확인받아 사퇴여부를 결정한다. 그리하여 이쪽 저쪽 국회의원 과반수가 소환된다면 지금 어느 한쪽의 요구처럼 국회해산ㆍ총선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환제도가 갖는 정작의 효과는 그토록 단순명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당수 한 사람이 거여통합을 결심했다고 해서,소속 국회의원이 마음 놓고 따라다닐 수는 없다. 구령 한 마디를 따라 줄줄이 사퇴서를 내기도 어려워진다. 그 결과로 당수 한사람을 위한 정치 게임은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니 3김이 이를 마다할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3김이 좋아 하거나 말거나,개헌사안은 공론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공론에 담는 뜻은 분명하다. 요컨대 민의를 바로 보라는 것이다. 오늘의 선거가 바로 「조개껍질」 투표임을,그래서 낙선=추방이라는 각오쯤은 있어야 하고,매일매일의 행세가 선거구민의 소환심사대상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사안이 실현불가능한 것이기에 끝으로 한가지 당장 실현가능한 일을 덧붙인다. 그것은 남북총리회담 기간중의 정치휴전이다. 이번 서울회담그것도 국회의장 초청행사가 정계 반쪽만의 행사로 그친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조개껍질추방ㆍ소환감이 아닐까 한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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