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전쟁이 끝났을때 소련 땅 사할린에는 32만명의 일본인과 4만여명의 한국인이 남아 있었다. 일본인들은 46∼50년 사이에 일본으로 귀국했고 56년 일소 공동선언 이후에는 일본인과 결혼한 한국인들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일본은 그들의 전쟁목적을 위해 그들 자신이 강제징용하여 억지로 끌고 갔던 한국인들을 데려가지 않고 팽개쳐 버렸기 때문이다.일본 정부가 데려가기를 거부함으로써 이역만리 사할린땅에 억지로 주저앉게 된 한국인은 약 70%가 소련 국적을 갖게 되었다. 나머지는 북한 국적을 갖거나 무국적자로 남아 있었는데 무국적자는 대부분 한국 국적을 고집하는 사람들이었다. 최근에는 북한 국적을 버리고 무국적으로 전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련과 국교가 없는 한국 정부는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 정부에 대해 사할린동포의 모국 방문등을 소련측과 교섭을 해주도록 촉구해 왔었다. 그러나 일본측의 미온적인 태도와 소련측의 일관된 거부반응으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30여년을 보내오다가 소련의 개방정책으로 한소관계가 개선되면서 89년부터 모국방문의 꿈이 이뤄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할린 동포의 모국방문이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그들의 한맺힌 「억류」생활이 뜨거운 눈물로 조국에 전해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무엇때문에 사랑하는 조국과 가족을 떠나 멀리 소련땅에서 억지삶을 살아 왔던가를 새삼 돌이켜 생각할 여유도 갖게 되었다. 여기서 일제의 만행에 새삼 분함을 이기지 못한 사할린 동포들은 동경지방 재판소에 1인당 1천만엔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사할린 동포와 유족 21명은 일본 변호사 11명과 재일동포 변호사를 통해 낸 소장에서 『일본은 조선인들을 귀국시키는 의무를 이행치 않아 그동안 가족재회 및 고향방문의 희망을 무산시켰다』고 위자료 청구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느끼기에 앞서 『65년 한일협정에 의해 청구권 문제는 완전 해결되었다』는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일협정에는 사할린의 한국인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 한일협정은 한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남한지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지 북한이나 소련땅까지는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얼마전 북한에 대해 별도의 배상용의를 표명하지 않았는가.
한국 정부는 지난 71∼72년 일제때 징용됐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직계유족으로부터 신고를 받아 1인당 3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지만 당시 사할린 동포들은 신고 대상에서 배제되었었다.
이제 와서 일본 정부의 성의를 촉구하고 일본 법정의 양심에 기대를 거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한일협정 체결 당시 졸속협상으로 범했던 실수를 반성하는 의미에서라도 우리 민간단체나 일본 변호사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적극 교섭에 나서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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