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정에 정통한 어느 외국인이 한 말이 생각킨다. 한국의 정치는 법치주의라기보다 정치주의에 흐르지 않느냐는 논평이었다. 그 뜻을 잘 음미해보면 상당히 비아냥기가 섞인 지적이 아닌가도 싶다.아닌게 아니라 우리나라는 헌법을 비롯,6법을 고루 갖추고 있고 입법ㆍ행정ㆍ사법의 삼권분립이 엄연히 제도화되어 있다. 그런 나라가 법치주의 아닌 것처럼 외국인의 눈에 비친게 기이한 일이다.
흔히 정치학에서 법치주의라함은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든가,국민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거나,그에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뿐더러 법치주의국가에서는 법률은 국민만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담당자도 준수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법치주의는 법앞에 평등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평등의 원칙을 규정,차별대우와 자의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우리나라 현실은 어떤가. 지난 3공,유신,5공 시절을 거쳐 민주화를 지향한다는 6공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의미에서의 법치주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정의 정치가 성행한다. 정의 정치는 때로는 정보정치를 의미하지만 보통은 윗사람의 지시,눈치 살피기에 따라 행정ㆍ입법ㆍ사법의 기능이 작동한다는 뜻일 것이다.
우선 최근 보도된 비근한 실례를 들어 행정부의 속성부터 살펴보자. 오늘날 남산을 좀먹게한 대형건물 철거문제가 있다. 남산에 아파트,외인주택등을 짓게한 것은 지난 60년대 권력자의 자의에서였다. 물론 당시의 권력자 안목이 그 정도밖에 내다보지 못한 탓도 있겠으나 행정당국이 이를 제어하지 못한 책임도 막중하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를 단계적으로 철거해서 남산을 공원화해보라는 고위층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서울시는 여론의 수렴,예산의 뒷받침도 없이 철거계획을 불쑥 발표한다.
그것이 이번에는 의외로 매스컴의 호평을 받자 서로들 자기공로처럼 우쭐대는 풍토다. 그래서 정치주의는 지시행정이 되기십상인 것이다. 거기에 소신있는,진정한 의미의 하의상달식 행정이 발붙이기 어렵다.
재야,야권에서는 요즘도 걸핏하면 정보기관의 공작정치 폐해를 공박하고 있지만 안기부법에 정보정치,공작정치를 허용한 조항은 단 한구절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들은 아직 공작정치가 지난시절의 물건너간 일이라고 믿지 않고 있으니 딱한 일이 아닌가.
5공말기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뜨거운 감자맛을 톡톡히 본 경찰은 여전히 불법연행을 자행하고 있다. 현행 형법 형사소송법의 어느 조문에도 불법연행해도 좋다는 규정이 없는데도 말이다. 공익을 대표해서 공소권을 독점한다는 검찰의 위상에도 문제는 있다. 검사가 제기한 정치인에 대한 공소의 취소여부를 정치권에서 협상용으로 운위한 예도 실제로 있지 않았던가.
사법부가 엄격한 증거주의에 입각,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ㆍ은폐ㆍ축소사건의 무죄를 선고한 것까지는 좋다고 치자. 하나 같은 사법부가 다른 공안사건이나 시국사범에 대해 그렇게 엄격한 증거주의를 적용해왔는지는 의문이다. 재판이 시류나 여론의 영향을 받아 「여론재판」이 될때 이미 법치주의와는 등진 것이 된다.
정치주의는 인사정책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통치권자,권력자는 본디 자신이 모든 행정을 직접 낱낱이 집행할 수야 없다. 그래서 법치주의아래서는 유능한 인재를 발굴,적재를 적소에 앉히고 그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통치의 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중국의 이언은 사람을 의심하면 쓰지 말것이요,사람을 쓸때는 의심하지 말라(의인불용,용인불의)라고 했다. 백번 지당한 지적이다. 하나 인사에 자신이 없으면 결국은 지연 학연등을 더듬어 잘아는 사람만은 몇번이고 되쓰게 된다. 거기에 새로운 발상,대담한 추진력이 나오기 어렵다. 6공들어 개각이나 중요 인사때마다 「그사람이 그사람」이라는 세론이 돈 것은 무리가 아닌 것 같다.
노태우대통령은 지난 88년 2월25일 취임식에서 「민족자존의 시대」와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표방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정부를 「정직한 정부」라고 부르며 민주화,분배의 정의,계층간 갈등의 해소를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로부터 2년반,마라톤으로치면 지난 25일 반환점을 돌아 5년 단임임기의 결승점을 향한 시점이다.
요즘 우리국민들은 총체적 난국보다 더한 위국을 맞고 있다고 걱정이 태산같다. 주가는 6백선을 훨씬 밑돌고 예산은 20%가 팽창하고 물가의 한자리수는 무너지기 직전이다.
부동산 값은 2배ㆍ3배로 뛰어 집없는 서민들은 무력증에 빠져 있다. 국회는 법안의 날치기 통과이후 두달이 넘도록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제2의 아르헨티나화,일본경제에의 예속을 우려하는 식자도 있다.
물론 오늘의 위국책임이 정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 정부의 무능ㆍ무기력,대통령의 지도력약화가 원인의 일단이라는 시각이 분명히 있다. 반환점을 돈 대통령도 이젠 신념을 갖고 정치주의를 지양,국민ㆍ야당과 더불어 난제를 하나씩 풀어갈 계제가 아닌가 싶다. 치적의 평가는 누구나 물러나는날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눈앞의 인기를 너무 의식하거나 여론이라는 시류에 떠내려가서는 안될줄 안다. 정에 치우치지 않는 정치를 해달라는 당부다.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는 권위주의를 청산,민주화로 가는 시점에서는 멋진 슬로건이었다.
하나 지도자 자신이 문자그대로 「보통사람」에 안주한다면 누가 믿고 따라 가겠는가. 결단을 할때는 단호하게 내릴줄도 알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사심없이 철두철미하게 「보통사람」이 되는날 오히려 통치력이 생길지도 모른다.<논설고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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