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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교육 외길… “영원한 이화인”/고 김옥길 이대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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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교육 외길… “영원한 이화인”/고 김옥길 이대명예총장

입력
1990.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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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부터 18년간 총장연임… 항상 활달ㆍ소탈/「12ㆍ12」직후 문교장관 지내 청문회때 곤욕도문경새재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심으며 은거해오다 25일 타계한 김옥길전이화여대총장은 평생을 여성교육에 몸바쳐온 이화인이었다.

40여년간을 이화와 더불어 살면서 독신을 지킨 그는 이화의 산증인이자 교육계 기독교계에서부터 사회활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동하면서 남성못지않은 활달함과 소탈감 소신 유머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치마저고리와 이화후문앞 서대문구 대신동 자택의 냉면파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남게됐다.

86년 직장암이 발병,지난해 대수술을 받고 입원 퇴원을 거듭하다 지난4월 이대교정에서 후배들이 마련한 7순잔치에 참석,오랫만에 건강하고 쾌활한 옛모습을 보였으나 이화와의 이별의식이 되고 말았다.

김전총장은 임종을 지킨동생 김동길 전연세대교수와 김옥영씨(이대도서관 사서ㆍ주임)에게 『나의 죽음으로 주위사람들을 번거롭게 하지말고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다.

김전총장은 21년 평남 맹산에서 태어나 43년 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한뒤 52년부터 모교교수로 재직했다. 졸업후 기숙사사감으로 일하다 미국유학을 떠나 웨슬리언대와 템플대대학원에서 수학한 4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모교를 떠나지 않았다. 61년 고 김활란총장의 후임으로 제8대총장에 취임,79년 후배인 정의숙전총장에게 물려줄때까지 18년간 총장직을 세차례 연임했다.

총장재임중인 65년 정부의 대학정원감축방침에 반발,정원에 포함되지않은 7백34명에게 교육기회를 줘야한다며 임의로 합격통지서를 보낸것이 말썽이 되자 사표를 던져 배짱총장이라는 평을 듣고 6개월만에 다시 복귀했다. 86년부터는 이화학당이사장겸 명예총장을 맡았다.

그의 교육신조는 사랑과믿음 봉사.

총장에서 물러난지 3개월만인 79년12월 12ㆍ12사태직후 문교부장관에 발탁돼 80년 5ㆍ17때까지 격동기 6개월간을 재직했다. 과도의 짧은 장관재임기간중 『학교일은 학교에 맡기자』는 교육자율화 정책과 교복ㆍ두발자율화 기반을 마련했고 학도호국단제 운영 및 학생군사교육을 개선하기로했으나 격렬했던 학원민주화시위와 혼미했던 정치상황에서 어렵게 장관직을 수행했다. 이때문에 88년 광주청문회에 증인으로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장관직을 물러난후 줄곧 충북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마을에서 은거하며 성경을 읽고 동네아이들을 가르치며 찾아오는 후배들에게는 손수심은 감자 등을 들려 보내기도 했다.

역시 독신인동생 김동길교수와의 남다른 우애로도 유명한 그는 김교수가 긴급조치위반으로 옥살이할때 뒷바라지를 해야했고,대신동집에 나란히 문패를 걸어놓고 살아왔다. 손님맞기를 즐겨 항시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정부고위관리부터 종합청사청소원까지 초대해 직접만든 평양냉면과 빈대떡을 대접,「옥길면 옥여주인」이라는 애칭도 갖게 됐다.

7순잔치때 동생이 생일선물로 강연료 원고료 등을 모은 1억원을 내놓자 목동 이대병원신축기금으로 희사할만큼 김전총장의 이화사랑은 지극했다.<한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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