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이 쓴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다시 읽는다. 87년 11월 대통령선거때 나온 공약집 같은 책이다. 지금 와서 보면 공약도 꽤 들어있다.이 책에서 저자는 「보통사람들의 보통대통령」을 표방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대통령이 국민들 일상대화에서 농담과 해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대통령은 신성 불가침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의 풍토에 비추어서는 신선한 맛이 있기는 했지만,지금 생각하면,제법 예언적인 말이다. 그 얼마뒤부터 「국민들 일상대화」에서 「물태우」「허태우」의 「농담과 해학」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으니까….
같은 대목에 이런 말도 보인다.
『(국민들이) 청와대 앞을 오가며 「요즈음 우리 대통령이 뭘 잘 모르는 것 같아. 마음에 안들어」라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일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 또한 매우 예언적이다. 청와대 앞을 오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나 「요즈음 우리 대통령… 마음에 안들어」라고 「떠들며 이야기하는」사람은 꽤나 많다. 지난 2년반을 돌이켜 보아 그럴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지 않으니,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년 6월5일,월요일 아침에 노대통령은 라디오 주례방송을 시작했다. 새로운 시도임에 틀림없다. 그 첫 방송화두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참 걱정입니다… 비가 좀 많이 와 주었으면 하는데,밤잠을 자다가 일어나 비가 오지 않나창문을 열어 보기도 하고… 밤을 지샐 때도 있습니다』
이같은 위정자의 날씨 걱정은 농자천하지대본의 동양적 미풍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도 모두 밤새 창문을 열어보기도 했다는 술회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그 일요일 밤따라,창문을 열어 본 사람이 대통령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데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가뭄 걱정은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허공에 빈 메아리만 남겼다. 게다가 방송노조와 야당은 전파남용 운운등의 시비를 걸고 나섰다. 이래저래 대통령의 주례방송은,내용이 없다는 핀잔속에,얼마 못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것은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퍽 상징적이다. 아주 6공다운 것이다.
그 6공다움은 이렇게 부연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모양은 좋으나,실속이 따르지 않는다. 말은 번듯하나,뒤끝이 초라하다. 뜻은 있으나,성취가 드물다. 방향은 옳으나,걸음이 더디다. 그 발목을 잡히고도 뿌리칠 기력이 모자란다. 모처럼 아이디어가 나와도 발벗고 챙기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사사건건 역작용을 빚는다. 그렇게 6공 1기의 전반이 지나간 것이다. 그런 6공다움의 집성을,우리는 8ㆍ15 민족대교류 선언의 전말에서 보았다.
이렇게 흘려 보낸 2년반의 6공궤적은 아무래도 그 사이 증권시세와 일치할 것 같다. 87년 6ㆍ29선언 뒤 6공전야(88.2.24)까지의 증권시세는,지수 404에서 656으로,2백52포인트나 뛰었다. 그러나 작년 4월 지수 1007을 기록했던 그 상승세는 어제 6공 전반 마지막날(24일)의 지수 500대로 급전직하했다. 그나마 5공의 축적과 올림픽 성공의 득점마저 까먹은 꼴이다. 이같은 급격한 상승과 하강곡선은 바로 6공궤적 그대로다. 「보통대통령」의 인기곡선도 아마 이와 비슷할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까닭의 설명은 여러갈래인 듯하다. 그러나 그 화살의 긍극적인 겨냥은 한결같아 보인다. 대통령의 결단과 의지를 묻는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5공청산 정국,공안정국,이른바 총체적 난국을 당하여 구체적으로 또 간절하게 표출됐었다. 그리고 지금의 파행정국이 다시 그의 결단과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고 보는 점에서 중목이 일치하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벌써 달포를 넘긴 파행정국이 제기하는 문제들은,대통령의 결단과 의지로 해결이 가능한 것들이다.
그중 지자제 시행은 대통령선거의 공약사항이요,여야가 합의했던 일이며,법으로 시행날짜까지 정했던 사안이다. 여야협상이 가능한 이런 문제를 가지고 대통령의 결단력과 의지를 의심받는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다음의 내각제 개헌문제는 좀더 복잡한듯 하지만 역시 그 귀추가 대통령의 결단과 의지에 달린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다시한번 보자.
『6ㆍ29선언은 확실히 국민의 것이며,역사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노태우 한사람의 것이 결코 아니며 국민여러분의 요청과 역사의 요구에 부응한 산물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던 같은 저자가 지금와서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6ㆍ29선언 당시에도 내각제를 괄호안에 묶어두고 직선제를 받아 들였습니다』(6ㆍ29 3주년 기자간담회)
말의 취지는 국민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겠으나,내각제를 포기하지 않고 괄호안에 묶어 두었다는 표현에 묘미가 있다. 기실 작금의 형세는 내각제를 묶었던 괄호가 풀릴 수도 있다는 투로 돌아간다. 6공 전반기를 결산하는 어떤 신문과의 회견에서도 그는 「국민이 원치 않는다면」 이란 말로 비슷한 여운을 풍긴다.
6ㆍ29선언을 「국민의 것」「역사의 것」이라면서,왜 같은 국민의 뜻을,겨우 3년만에 다시 떠보아야 하는 것일까. 지금은 오히려 「개헌을 않겠다」고 못을 박아 정국수습의 결단과 의지를 보여야 할때가 아닌가. 그렇지 않고 지금의 불안과 혼란이 가실 수 있을까. 국민의 뜻은 고사하고,여당의 집안사정과 야당의 자세로 보아서도,피를 보지 않고는 개헌이 가능할 것 같지가 않기에,더욱 그런 의구심이 깊어진다.
지금 6공의 전반기를 넘기며,많은 사람이 레임 덕(절름발이 오리) 현상을 걱정한다. 그러나 6공 2년반은,올림픽 밀월기 말고는,줄곧 레임 덕 현상에 시달려 왔다고 할 수가 있다. 그야말로 「파행천리」였던 것이다. 6공후반에 대한 걱정이 더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제발 개헌의 「뜨거운 감자」일랑 욕심내지 말고,남은 2년반의 과제는 오로지 6공 공약을 이행하는 일에 집중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아쉽기는,역시 한 사람의 결단이요,의지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 같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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