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비 감당못해 고3 중퇴… 한때 좌절/역경과 싸우는 의연한 모습 주위“눈시울”뼛골에 사무치는 불치의 병마를 향학의 집념으로 이겨냈다. 검정고시합격자가 발표될 때마다 역경을 이긴 사람들의 인간승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지만,24일 발표한 90년도 제2회 서울지역대입검정고시 합격자 3천6백65명중에는 선천성 혈우병환자 이귀병군(19ㆍ서울 송파구 풍납동 172 삼화연립 4동201호)이 수석을 차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9개과목의 평균점수가 96.3점이다.
혈우병 유전인자를 갖고있는 어머니 김영순씨(42)로부터 물려받은 이군의 병은 몸에 멍이 쉽게 들고 한번피가 나면 멎지않는 평생병. 눈에 쉽게 띄는 외출혈은 지혈주사 등으로 응급조치가 가능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출혈이 있을 때는 관절마디마디와 뼛속에까지 피가엉겨 몸을 제대로 가눌수 없도록 고통을 주는 무서운 병이다.
생후 7개월부터 이증세로 고통을 겪어온 이군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입원치료 한번받지 못했고 89년에는 가까스로 다니던 배재고3학년을 중퇴할수밖에 없었다.
은행청소원인 어머니와 시장경비원인 아버지 이연홍씨(49)의 월수입 30여만원으로는 가족의 생계비도 대기 어려운 형편이다.
3형제중 장남인 이군과 중2년생인 막내 석병군(14)까지 똑같은 혈우병을 앓고 있어 응급주사약값만 월3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전세 4백50만원의 4평짜리 연립주택 지하단칸방에서 칸막이를 치고 다섯 가족이 살아야 하는 환경은 성한 사람도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학교를 그만둔뒤 세상에 태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더욱 무서운 절망감에 빠져있던 이군에게 검정고시학원에 나가보라는 이웃선배의 권유는 한가닥 희망의 빚이 되었다.
검정고시전문학원인 고려학원대검반에 올해1월 등록한 이군은 아침7시면 학원에 나가 하오3시반까지 꼼짝않고 수업에 열중했고 더이상 버틸수 없을 때는 집에 들어가 잠깐 휴식을 취하곤 했다.
학원측은 학비전액면제의 특수장학생으로 선발해주었으나 5층까지 강의실을 오르내리는 것도 벅차 한달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학원측이 강의실을 재배치,대입반을 3층으로 옮겨준 덕분에 이군은 재도전의 의지를 키우게 됐다.
1m63㎝의 키에 겨우 41㎏인 가냘픈 몸매로 책과 병과 씨름하는 이군의 모습은 주위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이군의 담임 김기웅강사(50)는 『귀병이가 보통사람은 엄두도 못낼 의지력으로 병과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어머니 김씨는 수석합격소식에 『약값이 없어 주사도 못맞을 때 얼마나 가슴아팠는지 모른다』며 감격의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이군의 꿈은 세무대에 진학해 세무사가 되는 것. 주변에서는 서울대에도 들어갈 실력이라고 말하지만 세무대는 학비가 전액 국비이기 때문에 가정에 부담을 주지 않아서 좋고 장차 안정된 직장이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군은 『부모를 원망한 때도 있었지만 이제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며 『혼자힘으로 살아갈수있는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밝고 활기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이계성기자>이계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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