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 무기 「인질전략」 오히려 역효과/식량난 극심ㆍ「반미 격화」 기대도 빗나가페르시아만 사태가 무력대결의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사담ㆍ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21일 또다시 미국에 평화협상안을 제시,그의 잇딴 유화제스처가 무엇을 노리는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후세인은 이날 이전과는 달리 구체적인 협상조건을 제시하지 않은 채 『파국을 막기 위해 평화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극히 원론적인 제안을 했다.
후세인의 이번 제안은 지난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전격 점령한 이후 공식적으로 밝힌 세번째 협상안이다.
후세인은 지난 12일 최초의 협상제의를 통해 이스라엘이 아랍점령지에서 철수하고 시리아도 레바논에서 철수한다면 이라크도 쿠웨이트에서 철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후세인은 지난 15일 미국을 방문한 후세인 요르단 국왕을 통해 미군파병을 당시의 수준에서 동결한다면 쿠웨이트 철군협상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친서를 미측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나 후세인 국왕은 이같은 친서의 존재자체를 부인했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할때 「후세인의 친서설」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후세인은 또 이라크의 서방인질작전이 노골화되던 지난 19일 미군이 페르시아만에서 철수하고 대 이라크 금수조치를 해제한다면 서방인질들을 모두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서방 관측통들은 후세인의 이번 제안이 아무런 새로운 내용을 담고있지 않다는 점에서 선전공세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후세인의 이번 제의는 현재의 페르시아만 사태가 본격적인 군사대결로 이어지는 것을 이라크가 결코 원치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후세인은 이날 제의에서 백악관 당국이 자신의 평화안을 일축함으로써 「판단력의 부족함」을 드러냈다고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또 후세인이 이번 제의에서 구체적 협상조건을 밝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뒤집어 해석하면 협상조건보다는 협상자체를 중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후세인과 비슷한 시간에 요르단 암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타리크ㆍ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은 『모든 문제를 협상테이블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다』며 협상에 한층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같은 제안을 무시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라크가 자멸을 각오하지 않고는 미국등 다국적군과의 정면대결을 시도할 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속속 증강되고 있는 페만의 미 군사력은 이미 방어적 수준을 넘어섰으며 프랑스ㆍ영국 등 서방국가들도 이라크의 인질위협 이후 군사력 증강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형편이다.
후세인을 특히 당황케한 것은 이라크가 비장의 무기로 내세운 인질전략이 오히려 서방측의 강경자세를 부채질하고 아랍국가내에서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이라크에 동조적 입장을 보여온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까지도 이라크의 인질전략에 대해서만은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라크는 당초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 서방의 군사ㆍ경제적 포위망이 느슨해지고 아랍권내 여론이 반서방으로 기울 것으로 기대했으나 상황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때 아랍국가 곳곳에서 반미시위가 격화됐으나 이제는 점차 수그러드는 추세에 있으며 최근에는 이라크와 동맹관계인 예멘마저 경제제재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사태는 미ㆍ영ㆍ불 등이 무력을 사용한 해상봉쇄에 돌입,시시각각 이라크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점이다.
서방 전문가들은 이라크가 국가재정 수입의 95%를 차지하는 원유수출이 막힌데다 밀ㆍ쌀 등 식량도 2∼3개월분 밖에 비축하지 않고 있어 완벽한 경제봉쇄가 실시되면 6개월 이상을 견디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라크는 이같은 포위망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시도,수천명의 전쟁포로를 석방하고 이란점령지에서 철수하는등 파격적인 양보를 했다.
이에 따라 이란도 비밀리에 식량을 공급하는등 반대급부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지만 서방의 철저한 감시 때문에 이라크가 만족할만한 지원은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이같은 상황에서 이라크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미국과의 타협일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최근 이라크가 미국에 잇단 유화제스처를 보내는 배경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배정근기자>배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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