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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항명」과 권위의 붕괴/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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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항명」과 권위의 붕괴/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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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의식 확립ㆍ관료제 민주화 계기로건설부 직제개편 시안에 대한 직원들의 「집단항명」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공적 권위의 붕괴와 사회해체의 징후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이 어이없는 촌극앞에서 국민들은 마치 조타수 없이 표류하는 승객과 같은 불안감과 절박한 심경을 느낀다.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해 이처럼 크게 우려하는 것은,그것이 비단 일개 행정부처 내부의 문제라기보다 공직사회 전체,보다 넓게는 우리 사회전체가 오늘 앓고 있는 문제를 극명하게 투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공적 권위의 실추와 공동체의식의 약화이다.

그간 벌거벗은 권력에 크게 의존하던 권위주의체제가 붕괴되고 민주화의 열풍이 불어오면서부터 정부의 공적권위는 급성장하는 시민사회에 의해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전가의 보도처럼 전시대의 권위주의적 행정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6공」정부로서는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사회적 욕구를 적절하게 조정하고 공평하게 관리할 수 있는 권위도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뚜렷한 개혁의지 없이 권력게임에만 몰두해온 민자당 정권의 정치적 리더십이 결여된 정책실패도 공적 권위의 실추를 가속화 하는데 적지않게 기여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한다고 해도,설마하니 공권력의 상징인 중앙행정부서에서,그것도 장관이 주재하는 직원조회에서 집단 퇴장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상하의 위계질서가 엄존하고 귄위주의적 관료문화가 미만된 우리나라의 정부관료제 내에서 끝내 관료권의 내파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주지되듯이 공무원은 공인으로서 개인의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즉 공동선을 앞서서 실천해야 할 윤리적 책임이 있는 존재이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공직사회 내부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사회와 국민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아울러 생각할 때,아무리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깊게 결부된 사안이라 하더라도 이번 건설부 사건에서 처럼 공무원들이 집단행동으로 저항적 의사표시를 한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임이 자명하다. 수범과 절제로써 실추된 공적권위를 다시 세우고 국민에게 신뢰를 선사해야 할 장본인들이,이미 우리사회에서 크게 문제시되고 있는 소아적 집단이기주의를 무절제하게 표출시키고 공직사회의 공동체의식을 약화시킨 것은 공직윤리의 차원에서 볼때,더할 수 없이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정부관료제의 고위 책임자들도 아래의 몇가지 점에 대하여 심각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우선 권위의 참다운 의미를 되씹어 보아야할 것이다. 권위는 한마디로 그것을 수용해야 할 사람들이 마음으로 승복한 권력이다. 따라서 강제적 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상관의 뜻을 쫓는다면 그것은 이미 정당한 권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상위자의 공적권위가 그 참다운 의미를 발휘하자면 하위자들과의 내면적인 의사소통,다시 말해 교감이 있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정부의 상위 공직자들이 조직내에서 참다운 권위를 행사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의 상위공직자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목적이 항상 과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문지상에 보도된 대로라면 이번 건설부 조직개편 시안의 기본방향은 타당하게 잡혀졌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건설부의 비대하고 방만한 조직을 축소 조정하고,그 핵심업무도 정책기획을 중심으로 재정리한다는 개편구상은 실제로 조직 구성원들의 삶과 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충격적인 개혁안이다. 그렇다면 장관은 윗사람과의 독대 못지않게 부처내 하위조직 구성원들과도 최소한의 감정이입을 위한 노력을 했어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다음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할 것은 이에 우리도 행정관료가 짊어지고 있는 사명의 특수성이나 공인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에 못지않게 인간으로서의 공무원들의 실존문제에 대한 이해가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관료들의 행태를 논함에 있어 인간으로서 이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욕구와 가치를 이해하고 또 그것들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그들 개개인을 긍정적인 방법으로 조직과 통합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조직관리자들의 이러한 노력없이,조직구성원은 조직목표와 개인의 목표를 공유할 수 없으며,따라서 공적권위에 대한 자발적 수용도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이다.

정부관료제 내에서 공무원들이 박봉과 권위주의적 조직문화 등으로 인하여 엄청난 개인적 욕구불만,불안,직무 스트레스,무기력을 포함한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상위의 조직관리자는 「조직의 합리성과 인간의 행복」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보다 적극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직제개편시안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이 삼천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신분과 앞으로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그 논의과정에서 제외된 이들 당사자들의 처절한 좌절감을 우리는 보다 가까이 느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정부 상위공직자들은 「조직내 인간」관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즉 정부관료제가 그에게 부과된 막중한 일을 바르고 생산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속의 조직 구성원들이 비인간화와 소외의 수렁에서 벗어나,기여하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실존적 의미와 생명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를 「상징적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이번 건설부의 「집단항명」파동은 공적권위의 실추와 공무원의 기강해이라는 심각한 문제제기와 함께,관료제의 민주화와 인간화라는,위의 문제와 깊게 연관되면서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모두가 오늘의 과도기적 삶을 영위해 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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