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벌어진 바로 그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남침을 평화의 파괴로 규정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82호)을 채택했다. 이틀 뒤인 6월27일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침략격퇴와 평화회복을 위해 회원국들이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할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83호)을 채택했는데 이것이 유엔이 취한 역사상 유일한 군사적 강제조치이다. 이에 따라 7월7일에는 각국의 군사력을 미국 지휘하의 통합사령부에 예속시키고 그 통합사령부에 유엔기를 사용하도록 하는 유엔군사령부 창설 결의안(84호)이 안보리에서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16개국이 유엔의 깃발아래 참전하게 되었던 것이다.국제평화와 안전유지에 1차적 책임을 지며,유엔회원국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인 안보리는 북한의 남침행위에 대해 이같이 신속하게 대처함으로써 「평화의 수호자」「분쟁의 해결사」로서의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벌어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에도 유엔 안보리는 한국전 때와 비슷한 기민성을 보였다. 즉 침공이 있었던 지난 2일 당일 긴급소집된 안보리는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안(660호)을 채택한데 이어 나흘뒤인 6일에는 이라크에 경제제재를 결정한 결의안(661호)을 통과시켰다.
이어서 9일에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무효를 선언한 결의안(662호),18일에는 이라크에 대해 인질석방결의안(663호)을 차례로 채택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제재여부의 결정이다. 안보리는 지금 해상봉쇄 문제와 함께 이 문제를 긴박하게 다루고 있으나 거부권을 쥐고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간의 이해관계에 얽혀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다. 사실 40년전 한국전 당시에도 만일 소련의 안보리에 버티고 앉아 있었더라면 유엔군의 파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은 중국이 상임이사국 가입문제 때문에 다행히도 안보리를 보이콧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 관한 결의가 소련이 불참한 가운데 안보리에서 계속 나오자 7월27일 복귀통고에 이어 8월1일부터는 윤번제로 맡게 되어 있는 안보리의장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후부터 안보리가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한국전쟁과 관련된 조치를 전혀 취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은 「평화를 위한 단결결의」를 유엔총회에서 통과시켜 안보리대신 유엔총회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만일 이번에 중동사태를 두고 안보리에서 다국적군에 유엔깃발을 사용하도록 하는 결의가 나온다면 한국전에 이어 사상 두번째의 유엔군사령부가 탄생하는 셈이다. 이 문제를 두고 미ㆍ영과 소ㆍ중이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전 때와 비교해 보면 미국은 반대하고 소련은 찬성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유엔깃발 아래서는 작전상 제약을 받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소련은 다국적군이 독자적으로 작전할 경우 중동에서의 주도권을 미국에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계산에서 유엔군사령부의 창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