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협상등 일시적 치유 배제/군증강계속… 공격시점만 계산/미 여론도 반후세인 비등… 앞으로 지속이 문제【워싱턴=이재승특파원】 미ㆍ이라크 사이에는 현시점에서 충돌을 막아줄 완충의 벽이 없다. 배수의 진을 친듯한 조지ㆍ부시 미대통령과 사담ㆍ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상호 협상이나 체면유지의 명분상 후퇴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지 않고 있다.
최근 몇주일사이에 사담ㆍ후세인의 도전은 자극적이고 모욕적이다. 특히 미국시민 3천5백여명과 영국인 4천여명등과 이라크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서방 4개국 시민을 인질화,미국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총알받이」로 이용하겠다는 인질작전은 부시행정부에 전쟁의 선택을 강화케할 위험이 있다.
부시대통령은 문제의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불원,사실상 「억류」돼 있는 미국인들을 「인질」이라고 부르기를 기피해왔고 가능한 한 이를 부각시키지 않으려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떠한 답변을 해야 할 입장에 서게됐다.
미 행정부는 「인질석방」이라는 대중요법적인 좁은 의미에서의 타결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담ㆍ후세인의 근본적인 제거라는 근치요법적 접근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부시대통령은 12일 케네벙크포트에서의 휴가를 중단하고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귀환,국가안보회의(NSC)를 긴급 소집,대책을 숙의했다.
그는 회의에 앞서 「인질」문제에 대해 불협상의 전통적 입장을 단호히 재천명했다.
부시대통령은 어떤 방안을 선택할 것인가. 미국의 목적은 한마디로 「원상의 회복」이다. 이에따라 이라크에 대해 ▲쿠웨이트로부터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수 ▲쿠웨이트당국의 복원 ▲사우디아라비아 불침 ▲미국시민의 보호 등 4개항을 요구했다. 미국의 원상회복 요구는 물론 중동에서 미국의 다목적인 석유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제임스ㆍ베이커국무장관은 프랭클린ㆍ루스벨트대통령을 인용,『중동의 석유자원을 어느 한 세력의 지배아래 둘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전통적인 대중동정책이었음을 강조했다.
카터대통령은 「석유자원의 자유로운 유통」이 미국목표의 하나라고 선언했고 이어 레이건대통령이 이 카터독트린을 내세워 쿠웨이트유조선의 호송등 이라크ㆍ이란전에서 이라크편을 들었었다. 부시대통령도 이번에 카터독트린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담ㆍ후세인이 쿠웨이트를 합병하고,사우디왕국의 타도를 공언하는등 페르시아만등 중동의 정치구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야심을 분명히 노출시킴에 따라 부시대통령의 목표는 단순히 4개항의 관철에 머물 것 같지 않다.
미국의 다수여론은 사담ㆍ후세인이 이번에 미국측의 4개항 요구를 수락,정권을 연장한 뒤 3∼4년후 핵무장,재대결하는 경우 미국은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우려,차제에 이라크 군사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하거나 사담ㆍ후세인을 실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담ㆍ후세인은 미국측 요구에 대한 협상의사를 밝히는 유화적 자세보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면대결자세를 취해왔다.
그의 전략은 체질적으로 반미,반서방성향을 띤 아랍세계의 「가두정치」를 선동하고 또한 이에 편승,로빈훗과 나세르가 되려는 야심을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미국여론은 관측하고 있다. 쿠웨이트철수를 이스라엘의 아랍점령지 철수및 시리아의 레바논철수와 연계시킨 것은 아랍민중을 겨냥한 포석이고 미국시민등을 총알받이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미국여론의 반부시화를 기대해서다. 사담ㆍ후세인의 대미전략은 논리의 결여,자기모순,약육강식의 정글법칙적인 침략성등으로 해서 미국여론에 어필하지 못하고 거꾸로 강경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 승리한 베르남의 심리전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영국에 패배하고 자멸한 아르헨티나의 갈티에리를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부시행정부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미국언론과 여론의 지구력. 부시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군사고문 콜린ㆍ파월합참의장은 미국여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이익이 보호되고 가치관이 보호되고 궁지에 빠진 자를 돕고자한다. 그러나 동시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므로 빨리,능률적으로,성공적으로 해치우기를 원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부시 미대통령은 지상군파병이 『방어적』이라고 말했으나 지상군병력이 20만명선에 접근하고 해ㆍ공군력이 항모 4척등 전함 30여척에 항공기 약 4백대를 상회하며 장거리 중폭격기 B52기 50여대와 적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폭격기 F117 20여대등이 파견된 현재의 전력은 사우디방어의 목적을 훨씬 능가하는 힘이다. 부시는 1차적으로 경제봉쇄에 의한 굴복을 원한다. 그러나 경제제재의 성패를 가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그사이 군사적 대치가 현상태에서 지속되면 현재 거의 범세계적인 엠바고(교역금지)에 구멍이 날 가능성이 많고 반이라크 아랍연합전선이 붕괴되고 미 여론에도 틈이 벌어지기 쉽다. 시간은 부시편이 아니다.
부시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경제제재의 효과여부를 지켜보기 위해 3개월이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고 했다.
키신저 전국무장관은 『미국은 패배할 수도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다. 미국은 제재의 성공이 불확실하다고 결론내리면 이라크의 군사자산을 정확히 철저히 파괴할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세계의 지지를 촉구했다. 그는 미국의 다수 의견을 대변하는 것 같다. 윌리엄ㆍ크라우 전합참의장은 『지상전은 별개의 문제이나 제해ㆍ공권은 곧 장악할 수 있으며 그 다음은 정치적 의지에 따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대통령이 억류시민에 손이 묶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문제는 부시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다. 지금까지 국내외 여론은 그를 지지해왔다.
그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이라크를 포위했다. 정치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희생의 한계는 얼마인가. 그는 마지막 결단의 순간에 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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