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파병미군 6만명 돌파… 해상에서 시위만/인질 「방패막이화」대응책 없어/소 등 미 영향력 확대우려 견제미국이 해상봉쇄에 돌입하면서 페르시아만의 파고는 더 높아졌지만 상황은 지구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우디 파병 미군수가 이미 6만명을 넘어서면서 미국은 지금까지의 방어적 입장에서 공격적 자세로 전환할 수 있게 됐지만 전면전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딕ㆍ체니 미 국방장관이 『파병미군의 주둔기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듯 중동사태가 장기전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은 오히려 발목이 잡힌 처지가 된 것 같다.
페만은 미 함정들이 이라크 선박에 대해 교신만으로 선적 화물을 확인하고 무사통과시켜 주고 있어 다소 맥빠진 감조차 들 정도이다.
무력대결이 벌어지면 『5천명의 미국인이 관에 넣어져 송환될 것』이라는 사담ㆍ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악담에도 미국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인질문제와 미국의 독주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제로 제대로 운신을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인질문제는 이번 사태에서 미국의 적극적 행동을 가로막는 최대의 약점이다.
사디ㆍ마디ㆍ살리 이라크 국회의장은 17일 억류 외국인들이 군수사업부,석유부등에 할당돼 공군기지등 군사시설과 유전ㆍ정유시설 등 각종 전략산업시설에 분산 수용된다고 밝혀 이들을 「인간방패」로 삼아 미국등의 공격기도를 저지하려는 속셈을 여실히 드러냈다.
현재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래 이라크의 수중에 있는 서방 외국인의 수는 대략 2만1천여명으로 추계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이미 사실상 인질상태에 들어간 미국인과 영국인이 6천5백명이다.
미국이 대량인질사태를 경험한 것은 지난 79년말 이란의 회교혁명때이다.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에 억류된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대 테러정예부대인 「델타포스」가 출동,구출작전을 펴다 실패로 돌아갔었다.
이 사태는 이란 동결자산 해제라는 패배를 미국에 안겨주며 4백43일만에 끝났다.
10년만에 되풀이된 인질문제이지만 이번 사태는 양과 질에서 확연한 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번 이란사태의 경우 인질수가 50명으로 소수인데다 한곳에 집결해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수천명이 이라크 정규군이 지키는 「요새」에 분산 수용돼 있다. 이 때문에 제아무리 특수훈련을 받은 「델타포스」일지라도 페만에 떠 있는 인디펜던스항모 선상에서 발만 구르고 있어야 할 신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안보리 개최를 요청하는 한편 「국제적 행동규범에 배치되는 불법행위」를 자행한 이라크를 응징하는데 국제사회가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주변 주권국가를 무력으로 강점한 「국제사회의 무법자」 이라크가 유엔의 인도적 요청을 들어줄 것이냐에는 많은 국가들이 회의적인 태도이다.
더욱이 인질문제를 둘러싼 이라크에 대한 국제여론이 비등해졌을때 가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서방인질들을 과격한 친이라크 테러단체에 넘기는 일이다. 이미 바그다드에 잠입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부ㆍ니달이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내의 테러조직 등의 과격파들이 이라크의 묵인 아래 인질들을 장악토록 함으로써 이라크의 책임을 전가하는 방법이다. 결과는 어쨌든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크게 억제하는 수단이 될 것임이 확실하다.
또하나 미국의 군사적 제재를 주춤거리게 하는 것은 이해관계에 얽힌 국제사회의 견제이다. 특히 얼마전까지 세계의 주도권 다툼을 벌여온 소련의 견제가 두드러진다.
미국이 이번 사태에 적극 개입하게된 배경에는 주변 약소국을 침범한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한 「경찰국가」로서의 명분외에도 세계원유매장량의 45%를 점하는 페르시아만에의 영향력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바로 이점 때문에 미국은 견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번 사태의 해결에 앞장선 미국이 「사태이후」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을 다른 나라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우선 이 지역에 전통적 우방관계를 형성해 온 소련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점차 가시화되자 줄곧 유엔에 의한 「집단안보체제」의 가동을 주장해 왔다. 더 나아가 소련은 유엔안보리가 다국적 유엔군 결성을 결의한다면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밝힘으로써 현재 다국적군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강화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입장은 같은 서방권이라 할지라도 프랑스등과 같이 독자적 중동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경우에도 두드러진다. 과거 식민통치ㆍ경협을 통해 중동국들과 다양하게 얽혀있는 프랑스는 비록 군대를 파병했으나 독자적 행동을 고수한채 미 영의 해상봉쇄조치에도 가담치 않고 있다.
아랍연맹의 결정에 따라 사우디에 파병을 한 아랍국들의 입장은 보다 확고하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ㆍ경제적 원조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이집트가 다국적군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지만 아랍권의 전통적인 「반미ㆍ반제」기운을 고려한 모로코 시리아 등 아랍 참전국들은 아랍연맹 깃발이나 유엔 깃발아래 놓이기를 더 바라고 있다.〈윤석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