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하오 경제기획원과 각 언론사에는 증권투자가들의 거친 항의전화가 빗발쳤다.이날 이승윤부총리가 모 신문의 인터뷰에서 『자본시장개방 정책을 재검토중』이라고 밝힌 것이 개방시기를 늦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시름시름하던 증시가 투매양상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회사원이라고 밝힌 한 투자자는 『경제총수가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며 하소연에 가까운 불만을 털어 놓았다.
『사실 요즘 증권하는 사람들은 증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습니다. 금융실명제 유보니 재벌의 부동산매각조치,한소관계의 급진전 등 숱한 대형호재가 꼬리를 물었는데도 증시는 가라앉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대로라면 손해를 보고서라도 증권에서 손을 털고 싶지요. 그러나 푼푼이 모은 귀한 돈이 삼복에 얼음녹듯 줄어들고 있으니 우리같은 소액투자자들이 쉽게 발을 뺄 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어차피 버린 돈이거니 하면서도 92년의 자본시장개방이란 최후보루에 기대를 걸고 본전이나 건질 셈으로 체념반 기대반으로 견디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양책을 써도 살아날까말까 한판에 부총리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꺼져가는 모닥불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사실 이날의 증시는 투자자들이 이 회사원처럼 분통을 터뜨릴 만큼 삽시간에 내려앉아 「부총리주가」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자본시장개방 연기설이 알려진 직후인 하오 2시께는 한때 종합주가지수 6백20선마저 무너지는 듯했다.
증안기금이 총거래대금의 절반을 웃도는 7백억원의 자금을 풀어 가까스로 6백25를 유지했다. 이날의 주가지수는 우연하게도 지난 88년 4ㆍ26 총선결과 집권 민정당의 패배가 확정된 당일(6백18) 이후 2년3개월 만의 최저치이며 8월들어 7번째 연중 최저 신기록이었다.
이부총리로서는 사실 억울한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날의 폭락세는 민자당 일각에서 대안도 없이 부양책을 들먹이다 당정협의 결과 공수표로 끝난 데 대한 실망감도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진의가 어떻든 일국의 경제총수라면 언행에 좀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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