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 교사만 덩그렁/문화활동ㆍ대화장소 태부족/지역과 연대감 노력도 한계지방캠퍼스를 관내에 두고 있는 경찰서장은 편하다. 거의 매일을 대학정문 앞에서 근무해야 하는 서울캠퍼스나 지방대학 관할 서장과 비교하면 시위진압에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시위참여 숫자가 적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형상 캠퍼스가 완전 고립돼 「길목」만 차단하면 쉽게 진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캠퍼스는 고립돼 있다. 논밭의 하숙ㆍ자취집군락과 술집 몇곳이 전부인 삭막한 대학촌,단절된 지역사회,하교시간이 지나면 썰렁한 교정 속에서 약동하고 고뇌하는 젊음과 드높은 이상,상아탑의 신선한 낭만은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리지 못한다.
『4년간 직장에 출장다닌 느낌이고 특정군부대에 주둔한 추억같은 것입니다』 졸업을 앞둔 건국대 충주캠퍼스 조모군(23)의 대학생활 기억은 지방캠퍼스가 낭만과 다양성이라는 대학문화를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있음을 대변해 준다.
지난7일 연세대 원주캠퍼스 교정은 한적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했다. 넓은 캠퍼스에 눈에 띄는 학생은 10여명도 되지 않았다. 도서관에는 불과 30여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적지않은 수가 부근 중ㆍ고생이었다.
기숙사는 문을 닫았고 하숙촌에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원거리 통학생이 많기도 하지만 대다수 지방캠퍼스가 허허벌판이나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아 대학촌이 형성돼 있지 못한것이 학생들이 캠퍼스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큰 이유이다. 원주캠퍼스 주변에는 식당ㆍ가게 등이 통틀어 10개업소 뿐이었고 시내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40분을 나가야 한다.
외국어대 용인캠퍼스도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학교앞 2㎞지점까지 하숙집 외에는 가게 한곳 찾기 힘들다. 학교에서 30분걸려 나가면 면소재지가 있으나 별 편의시설이 없어 학생들은 성남 광주에 나가야 술도 마시고 미팅도 할수있다. 자취생들은 요즘 교내도서관 신축공사장의 인부식당인 함바집을 애용한다.
고려대 서창캠퍼스(조치원)도 논밭사이에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임영환군(29ㆍ경제4)은 『지난해 눈부위에 5㎝찢어진 상처를 입었으나 청주까지 가야했다』며 『밤에 몸이 아프면 교통마저 불편해 큰일』이라고 어려움을 말했다.
학교주변을 중심으로 그나마 어설프게 생겨난 대학촌이라는 것도 술집ㆍ당구장ㆍ전자오락실 등 소비지향적 유흥업소가 대부분. 중앙대 안성캠퍼스 후문앞에는 수년전부터 하숙촌주변에 60여업소가 생겨났으나 당구장이 8곳이고 나머지는 카페ㆍ전자오락실 등이며 서점은 단 한곳도 없었다.
캠퍼스가 고립되자 밤늦게 인근 불량배들이 교내에 들어와 술을 마시거나 학생들의 금품을 빼앗고 심지어 여학생을 폭행하는 일도 발생하나 치안의 손길은 외진곳에까지 미치지 못한다.
K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자체적으로 학생 10명씩 조를 편성해 교내를 순찰하기도 했는데 해가지고 난뒤에는 여학생들은 학교에 잘 들어가려하질 않는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떠나버리는 학생들도 동아리(서클) 등 자치활동이나 과모임 미팅 등 어울려 즐기고 토론할 기회도 적다. 또한 거의 모든 지방캠퍼스 소재지에 다른 대학이 전혀없어 대학문화를 교류하고 재창출하지도 못한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구본주군(26ㆍ경영4)은 『축제나 개강파티를 해도 참석자가 적어 안타깝고 장소문제로 입씨름을 해야해 분위기가 삭막하다』고 말했다.
상명여대 천안캠퍼스 총학생회는 지난 대동제(축제)때 참여학생이 적자 대부분인 서울거주 학생을 위해 관광버스를 대절해 참여를 유도했다. 1ㆍ2학년만 있는 홍익대 조치원캠퍼스는 체육대회 형식으로 축제를 가졌으나 축구경기 선수정원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건국대 충주캠퍼스 학생회장 원보국군(23ㆍ경제3)은 『지방캠퍼스는 문화혜택의 기회가 적고 응집력이 약한만큼 대학내 문화활동이 활성화되고 구심점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서 『지역적 연계나 학술ㆍ토론회ㆍ연극 등이 미흡하고 축제도 소비지향적인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학생자치활동의 핵심이랄수 있는 동아리활동도 숫자는 적지않으나 활동폭은 미미한 편이다. 건국대(충주)는 50여개,동국대(경주)는 60여개 동아리가 있는데 많은 지방캠퍼스의 동아리중 탐구나 연구ㆍ봉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 많지 않다는게 공통적 현상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역적 특성을 살린 중원문화연구회(건국대) 고적연구반(동국대) 구비문학연구회(상명여대) 등 동아리가 활동하며 지역과의 연대감을 갖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홍익대 조치원캠퍼스는 내년 축제부터는 농민ㆍ노동자ㆍ학생 합동체육대회를 열 예정이며 많은 지방캠퍼스가 특히 농활ㆍ시민대학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서의 고립을 탈피하려 하고있다.
그러나 이는 「의식화」된 동아리나 총학생회에 의해 일부 이뤄지고 있을 뿐 대다수 학생들은 『졸업하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있는게 사실이다.
지방캠퍼스의 이같은 현실은 학생운동이 지향하는 민중성과 주체성을 살리지 못한다는 자체비판을 받기도 한다. 총학생주관으로 집회를 열어도 참여자가 1백명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많아도 2백∼3백여명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금ㆍ토요일이나 월요일 상오중에는 집회를 열지 않고 평일에도 늦은 시간을 피한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총학생회장 지정섭군(23ㆍ임상병리4)은 『지방캠퍼스 특성상 학생을 모으기가 어려운데다 학생들도 개인적이고 비주체화 돼 학생회활동을 이끌어나가기가 쉽지않다』고 밝혔다.<한기봉ㆍ이충재기자>한기봉ㆍ이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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