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예산편성 권한을 장악하고 있는 경제기획원은 과연 나라 살림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일까.예산철만 되면 으레 있는 예산줄다리기이긴 하지만 때로 있는 상궤를 벗어난 듯한 실랑이를 대할 때마다 이런 의문을 갖게되는 것은 여간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예산편성」의 주변에는 늘 힘깨나 쓰는 부처가 요구하는 예산은 한푼도 깎지 못하면서 힘없는 부처와 서울시등 지방에는 당연히 지원해야할 예산마저 무시해 버리기 일쑤라는 말이 아직도 있는 것은 나라 세금을 적절히 쪼개서 살림을 꾸려야 하는 예산당국이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물론 한정된 재원으로 나라살림을 꾸려야 하는 기획원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배분은 공평해야하고 예산배정의 우선순위와 완급을 정하는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획원 당국에게 우리가 이같은 지적을 해야만 하는 소이는 「대도시 교통난 완화대책」에 소요될 예산을 형식적으로만 계상하는 눈가림식 예산편성 자세가 여전하다는 보도(본보 15일자 23면)를 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4월초에 발표한 6대도시 교통난 완화대책은 국민에 대한 공약임이 분명하다. 10개년 계획으로 추진할 교통난 완화시설에 소요될 27조원의 재원중 43%에 달하는 11조5천억원을 정부예산에서 직접 지원한다는 정책방향과 의지가 국민적 공감과 기대를 받았던 사실은 불과 엊그제 일처럼 국민들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 실행 첫해 예산을 짜면서 기획원은 서울ㆍ부산ㆍ대구ㆍ대전 등 대도시 지하철 건설소요재원 1조3천8백억원중 정부부담분(30%)인 4천1백40억원을 계상해야 하는데도 8백50억원(6%)만을 예산에 반영키로 했다니 구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서울시는 고통난 완화계획에 따른 정부의 직접 지원금이 내년에만도 3천4백억원(정부보조 2천5백억원ㆍ재정특융자 9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판단,2기 지하철 65㎞를 조기착공까지 한 판국에 2백억원의 재정특융자밖에 줄 수 없다는 기획원의 통보를 받게되어 이미 착공한 5호선 지하철의 93년 완공계획은 차질을 빚게됐고 지하철 1백50㎞(6ㆍ7ㆍ8호선) 증설계획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전국의 차량이 3백만대에 육박했고 서울은 지난달말로 1백10만대를 넘어섰다. 차량의 포화상태로 대도시교통체증이 한계상황에 육박했으며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일시에 다량의 교통인구를 수송하는 지하철 증설밖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는 것을 경제기획원이라고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서해안개발ㆍ산업시설확충ㆍ사회복지기반 시설확대도 예산배정의 우선순위과제이지만 대도시의 교통난 해소는 우리 사회가 그야말로 화급히 해결해야할 발등의 불임을 기획원 당국자들은 거듭 인식해서 교통난 완화를 위한 예산배정에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본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예산에는 「팽창」에 대한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그럴수록 완급에 대한 냉철한 선택이 중요하다. 뒤로 미룰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을 엄정히 가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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