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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실체 존중부터(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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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실체 존중부터(사설)

입력
1990.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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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45돌을 맞는 감회는 착잡하기만 하다. 8ㆍ15의 감격과 곧 바로 이어진 분단상황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의 흐름을 비웃듯 아직도 해소의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냉전의 시대가 종막을 알리는 마당에,유독 남한과 북한만이 냉전상태를 더욱 고착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참담한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제2의 광복인 통일까지 분단의 고통과 비극을 얼마나 더 견뎌내야할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가 막막하다.그나마 한가닥 기대를 걸었던 남북대교류는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북한측은 선심이라도 쓰듯 선별입북은 환영한다더니 막상 명단을 내놓으려니까 접수마저 깨끗이 거절하고 나섰다. 그냥 거부한 게 아니고 또 단서와 이유를 달았다. 그 요점은 간단하다. 절차문제에서부터 우리 정부는 쏙 빠져 달라는 강변이다. 재야단체와 직접 접촉하여 알아서 할테니 정부당국쪽은 얼씬도 하지 말라는 주장과 다름 없다. 이 내용을 뒤집어 보면 우리 정부의 실체는 인정할 수 없고 철저하게 무시하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음이 쉽게 간파된다.

북에만 국가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강요하는 자세로 대화와 교류에 임하겠다는 것이 과연 통일문제를 향한 접근인지 아닌지는 여기서 자명해진다. 대화의 상대를 무시하고 재야와만 말을 트겠다는 것은 너무나 속보이는 억지임이 틀림없다.

이제 우리가 거듭 깨달아야 할 것은 북한에 대한 헛된 꿈을 깨자는 것 뿐이다. 정부나 민간 모두 마찬가지다. 문은 두드려야 열린다고 하지만,북한은 문을 열 의사가 지금으로선 조금도 없음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우리 정부더러 빠져달라는 것은 한낱 핑계에 불과하며 진짜 의중은 교류도 개방도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통일운동에 나선 재야단체에게 신중한 자기 절제를 요구하고자 한다. 통일문제가 전민족의 공통과제임엔 아무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통일열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또한 민족의 사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절차와 방법과 내용의 선택엔 민족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함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곱고 미운 것도 다른 문제에 속한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도 벅찬 과제가 남북관계이며 통일문제이다.

정부당국이 절차문제에 간여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국민의 신변안전을 보장받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라는 실체가 엄연히 있음에도 없다는 식으로 무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자기존재를 부인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이점에도 때로 재야측이 판문점을 넘어가겠다고 우겨대는 것은 지나친 자학적 저항이 아니겠는가. 밀고 밀리면서 정부규탄을 하면 한풀이는 될 수 있을지언정 통일접근에는 아무 실효가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경계할 바는 북한당국에 오판의 소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우리 정부는 반통일세력으로 탄압하고,그것에 대한 저항이 거세기라도 한듯이 보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재야의 앞길을 가로 막는다고 정부에 대해선 낯을 붉히며 방북을 거절하는 북한측에 대해서는 굳이 부드러운 얼굴을 한다는 게 과연 통일의 열망을 표현하는 방법인가 철저하게 자문해 볼만하다.

통일운동에 기여하는 길은 가시밭가듯 험하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생각하고 잘못을 고쳐가며 힘을 합해야 그나마 길이 열린다. 내 주장만 옳고 따라야 한다는 것은 통일문제를 다룸에 있어 금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착잡한 국민의 심중을 두 눈을 크게 뜨고 헤아려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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