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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혔던 독립유공자 대규모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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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혔던 독립유공자 대규모 서훈

입력
1990.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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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광복 45주년 맞아 6백13명 포상/연좌폐지ㆍ중소 교류ㆍ월납북 포함 크게 늘어/정부,전향적 자세로 자료수집등 많은 노력이번 제45주년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게 되는 애국지사는 6백13명으로 지난 62년 독립유공자 포상이 시작된 이래 63년 7백74명,77년 1천3백14명에 이어 3번째의 대규모 서훈이다.

또 그동안 건국훈장 3개 등급과포장,대통령 표창으로 나누어 포상했던 것을 모두 건국훈장으로 품격을 높였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이번 포상은 건국훈장 3등급인 독립훈장이 14명,애국장이 1백2명,애족장이 4백97명이며 이 가운데 생존자는 53명뿐이고 나머지 5백60명은 고인으로 유족에게 훈장이 추서된다.

지난 87년 이래 한동안 독립유공자 포상자가 연20명 내외에 머물다 이번에 대폭 늘어난 것은 그동안 국내의 활발한 연구성과와 자료발굴,공산권 교류확대에 따른 중국과 소련지역의 사료입수,가족중에 부역사실이 있는 독립지사를 포상에서 제외했던 연좌제 폐지 등이 크게 작용했다.

또 남북 긴장완화 분위기에 따른 민족화합차원에서 그동안 금기시 해왔던 월ㆍ납북인사 및 소재불명 인사들에게까지 서훈대상을 확대하고 항일투쟁과정에서 사회주의운동이나 공산주의운동을 했더라도 해방이후 북한정권에 협력하지 않은 독립지사를 민족주의자로 간주,포상을 함으로서 대폭 늘어났다.

이밖에 독립유공자 본인이나 후손들이 『상을 받으려고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포상받는 것을 고사해 오다 친지나 사회단체의 설득으로 뒤늦게 포상을 받는 사례가 많은 것도 서훈자증가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 서훈자중 납북인사는 임정 국무위원,의정원 부의장을 지낸 최동오 선생(독립장),동아일보 체육부기자시절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이길용 선생(애국장) 등 4명. 최동오 선생은 독립운동에 기여한 혁혁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납북인사인데다 아들인 최덕신이 월북,조통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해 그동안 포상이 미뤄져 왔었다.

가족중에 북한정권에 부역한 사실이 있어 포상을 받지 못했던 지사중에 연좌제가 폐지됨에 따라 이번에 서훈된 지사는 1백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유족들은 이같은 사실들을 밝히기를 꺼리고 있으나 뒤늦게나마 공적이 국가에 의해서 인정돼 포상이 주어진 것은 유족을 위해서나 민족의 장래를 위해 퍽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애국장을 받은 유평파 선생(작고)과 송정헌씨(70ㆍ중국 거주)부부 독립유공자는 공산권 교류확대에 따른 중ㆍ소지역의 자료입수와 인적교류가 활발해져 서훈이 가능해진 대표적인 사례다.

유평파 선생은 38년 중국으로 건너가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 활동과 백범 김구 선생의 경호를 맡았으며 46년 임정귀국때 함께 귀국했다가 백범의 밀명을 받고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47년 37세로 사망했고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중국인 부인 송정헌씨는 남경에 살고 있다.

유평파 선생부부의 서훈은 중국에서 모친과 함께 살던 아들 수송씨(54)가 지난 88년 광복회 초청으로 영주귀국해 KBS 교향악단 트럼펫 연주자로 활약하면서 포상신청을 해 이루어진 것.

42년 2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은 그동안 유족들이 서훈을 사양해 오다가 이번에 문화부측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독립장이 추서됐다.

또 이번 서훈자중에는 절손이 돼 포상신청을 할 유족이 없는 의병도 15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처절한 항일무장투쟁을 하다 가문이 풍지박산돼 대가 끊긴 이들 의병들의 경우는 역사학자들이나 향토사가들이 자료를 모아 포상신청을 해 서훈이 됐다.

또 1905년 을사보호조약 후 이토총독이 타고가는 기차에 돌을 던져 이토에게 상처를 입힌 원태근(애족장),일본 대판에서 소화일왕을 암살하려한 김종성(애국장),양조장 인부들과 우원총독을 5차례나 암살하려한 윤학수(애족장) 지사 등의 공훈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건으로 항일운동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해방후 오랫동안 야당생활을 했던 고 정일형박사(82년 작고)에게 애국장이 수여된 것도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로 풀이되고 있다. 정박사는 일제때 항일운동을 하다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4번이나 구속이 됐고 미국 유학시절에는 재미유학생 외교부장으로 안창호 선생의 독립사상을 유학생들에게 전파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 공적이 많았으나 사후 8년만에 서훈된 것이다.

이처럼 대규모 포상이 가능하게 됐던 것은 보훈처의 노력이 크게 뒷받침됐다.

보훈처는 그동안 각종 자료에서 독립운동에 관련된 5만여명의 명단을 카드로 작성해 놓고 후손을 찾기 위해 공고를 내는 등 서훈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보훈처는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포상이 일본법원의 재판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인정하고 앞으로 중국 소련과의 교류확대를 통해 이 지역에 사장된 독립운동자료 수집에 나설 예정이며 구라파지역의 임정 외교문서나 외교관 일기도 수집해 보완할 방침이다.<이계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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