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방북」 당국자간 접촉거부 북의 속사정/내부사정 어려운 듯… 개방꺼려/관행무시한 채 「절차」 양보 안해/정부선 북에 무리한 부담안겨 역작용도정부가 제의한 특정단체에 대한 신변안전보장각서 교환을 북한이 끝내 거부함에 따라 13일부터로 예정됐던 「민족대교류」는 사실상 무산됐다.
그동안 정부는 7ㆍ20 특별발표이후 점차 구체화된 대북제의를 내놓으면서 우리측의 기존입장을 상당히 완화해 갔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측의 제의에 대해 계속 선전적 역공만을 가함으로써 교류에 응할 준비나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결국 북한은 자신들이 초청해 놓은 특정단체의 방북문제에 있어서도 해당단체간 접촉이라는 조건을 내세워 교류를 회피함으로써 현단계에서는 일체의 남북간 인적 왕래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백히했다.
북한이 특정단체의 방북마저 거부한 것은 어떠한 교류도 받아들일 수 없는 내부사정때문에 명분을 포기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최근 우리측에서 민족대교류 기간중의 방북신청을 접수하고 특정선별단체의 방북도 허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범민족대회추진본부,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서총련,민중당 등 각 단체들이 방북계획을 발표하자 방송매체를 통해 이들 특정단체들의 방북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따라 북한은 지난 10일 우리측에 서총련,천주교사제단,범민족대회추진본부의 방북문제를 협의키 위해 이들 단체와 북한측 대응단체와의 실무접촉을 11일중 각각 갖자는 제의를 해왔다.
정부는 이에대해 단체간 접촉은 불필요하다는 입장과 함께 이들 특정단체 소속원중 방북신청을 한 사람들의 명단을 전달하고 이들에 대한 신변안전보장각서를 넘겨받기 위해 13일중 당국간 연락관 접촉을 갖자고 다시 제의했다.
결국 북한은 단체간 실무회담주장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당국간 접촉을 거부,협상의 여지를 없앴다. 얼핏보면 이번 특정단체 방북이 무산된 것은 당국간 또는 단체간 실무접촉이라는 남북간 입장차이에서 기인한 절차상의 문제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남북관계에 있어 적십자회담,고향방문단 등 모든 교류에서 쌍방 당국이 서로의 신변안전을 보장해온 관행과 실질적 필요성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당국 배제주장은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행을 무시하더라도 북한이 정말 교류를 실행할 의사가 있다면 당국간 접촉을 통해 명단을 넘겨받고 신변안전보장각서를 전달한 뒤 이들 단체와 일정등 구체적 문제에 대해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측이 당국간 접촉원칙을 포기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단체간 접촉을 허용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현재 재야단체가 「정부의 까다로운 절차 제시로 인해 교류가 무산됐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바로 이 부분이다.
이에대해 정부는 국민보호라는 측면에서 당국간 신변안전보장 확인없이는 우리 국민을 북한지역에 보낼 수 없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와함께 북한이 우리측의 양보조치에도 불구,단체접촉만을 주장하는 등 교류거부의사를 분명히할 경우 단체간 접촉을 허용하더라도 실질적인 교류는 이뤄지지 않고 선전장으로만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또한 통행협정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단체간 합의만으로 왕래가 이뤄질 경우 남북관계의 난맥상을 조성하게 되리라고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특정단체 방북문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리측의 양보에도 불구,북한이 계속 기존논리를 고수하며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과거 남북한이 대화의사보다는 선전전에만 관심을 가질 때는 서로의 논리를 강하게 내세웠다고 분석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측이 이번에 특정단체의 방북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어느 정도 우리측 논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이번 특정단체 방북이 성사됐을 경우 이들이 판문점 범민족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각계각층」 논리를 사실상 포기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당국배제」라는 논리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북한은 처음부터 일체의 남북교류에 응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북한이 이처럼 남북교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난후계문제 등 심각한 내부사정으로 인해 급격한 개방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민족대교류 신청자의 전체명단접수는 물론 특정단체의 방북도 허용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특정단체의 방북을 받아들일 경우 단기적으로는 대남 선전공세및 통일전선 형성의 측면에서 이익을 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일부라도 교류를 허용하면 다른 수많은 단체의 방북을 막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전문가들은 북한이 7ㆍ20발표이후 상당히 당황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비교적 관행을 중시하는 북한이 격에 맞지 않는 대상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고 잘못 파악한 사실을 근거로 우리측을 비난하는 등 혼선을 빚어왔다는 것이다.
7ㆍ20발표에 이은 우리측의 계속된 대북 교류제의는 이처럼 북한에 개방압력을 가했으나 같은 이유때문에 북한에 무리한 부담을 줌으로써 남북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기능의 측면도 갖는 것이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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