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공세명분… 미에 책임전가/다국적군 분열ㆍ입지약화도 다각 계산/PLO등선 벌써 효력… 지략탁월 입증전면전으로 번질 것처럼 치닫던 중동사태가 잠시 소강국면을 맞으면서 대치하고 있는 양측은 앞으로의 명분축적과 세과시를 위한 성명과 대응의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사담ㆍ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12일 바그다드 라디오ㆍTV를 통해 쿠웨이트주둔 이라크군 철수의 전제조건을 제시함으로써 그가 의도하는 이번 사태발전의 일단을 드러내 보였다.
후세인이 제시한 3가지 전제조건중 사우디내에서의 미국등 외국군대 철수와 대이라크 경제제재 해제등 2가지는 그가 쿠웨이트를 무력강점한 「원인제공자」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나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등 점령지역에서의 이스라엘군 철수를 들고 나온 것은 그가 앞뒤를 정확히 재는 탁월한 지략가라는 것을 다시한번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처음 쿠웨이트 침공을 형제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 아랍권 내부의 비난이 퍼부어지자 이를 아랍권내 빈국과 부국간의 대결양상으로 몰아가던 후세인은 미국등의 외세개입이 본격화되자 아랍내에 구조적 모순을 심어 놓은 미국등 제국주의자에 대한 아랍국의 「성전」으로 분쟁의 성격을 유도해나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ㆍ모로코 등 친서방 온건노선의 아랍국들이 사우디에 동조해 대이라크 제재에 가담하자 이번엔 예견된 대로 「이스라엘카드」를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등에 대해 피해의식이 강한 아랍권에서의 「이스라엘 카드」는 흩어지기 쉬운 사막의 모래위에 물을 뿌린 것처럼 대단한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다. 후세인이 이처럼 아랍권의 「전가의 보도」인 이스라엘을 끌어들인 속셈은 분명하다.
이를 이용해 아랍권 내부의 분위기를 친이라크쪽으로 반전시키고 과거 4차례의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아랍국의 영토를 강점했음에도 단 한차례의 개입도 꺼리던 미국의 2중적 처세를 부각시켜 반미 기운을 북돋우려는 것이다.
또 팽팽한 군사대치 상황속에서 후세인이 이러한 「평화공세」를 먼저 가함으로써 만약의 무력충돌 발발시 그 책임을 미국등에 전가시키려는 의도도 다분히 포함돼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이라크가 사우디를 침공하지 않는 한 미국이 먼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를 위해 선제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막는 명분용 평화공세이기도 하다. 이 경우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및 병합은 기정사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강점한 아랍지역은 지난 67년 6일전쟁을 통해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그리고 73년 4차 중동전시 시리아로부터 강점한 골란 고원지역이다. 예루살렘ㆍ베들레헴 등 이스라엘의 종교적 본향이 위치한 요르단강 서안은 탱크가 진격을 개시하면 4시간 만에 수도 텔아비브를 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놓여 있다.
또 고원위에 서면 촌락의 안방 깊숙이까지 엿볼 수 있는 골란도 이스라엘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당연히」 후세인의 제안을 거부했다. 샤미르 이스라엘총리의 고문인 아비ㆍ파즈너는 『후세인이 자신과 대치하고 있는 다국적군을 없애고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국제적 경제제재조치를 피하기 위한 값싼 선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물론 이스라엘은 강점했던 영토를 도로 내준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67년 전쟁때 이집트로부터 강점했던 시나이 반도를 82년 이집트에 완전반환했던 전례가 있다.
그러나 그 반환은 카터 당시 미 대통령과 사다트 이집트대통령 베긴 이스라엘총리 등 3자간의 캠프데이비드 평화협정조인으로 가능했었다.
이집트가 이러한 독자적 평화안으로 아랍연맹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혀 제명됐다가 지난해 겨우 회원국으로 재가입할 수 있었던 데서도 아랍인의 대미ㆍ이스라엘 감정을 알 수 있고 후세인은 이를 정확히 읽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서도 후세인은 이번 제안을 실현가능성보다는 정치적ㆍ전략적 효과에 둔 게 확실하다.
또한 이같은 후세인의 이스라엘 끌어들이기 전략이 효력을 발생하고 있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외세에 대항해 쿠웨이트 사수를 외치는 이라크의 깃발아래 수만의 팔레스타인ㆍ요르단인 등이 자원입대를 하고 있으며 아랍인들의 반미시위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점령지역내 토착팔레스타인들은 후세인을 「해방자」로 간주해 그동안 끊임없이 전개해온 「인티파타」(대이스라엘 투쟁)를 더욱 가열차게 전개할 전망이다.
한 알제리 파괴는 『아랍인들은 수년 만에 외세에 굴종하기 보다는 현상타파를 위해 행동하는 지도자상을 발견했다』며 그간 아랍인들의 피해의식에 대한 보상심리의 구심점으로서 후세인의 역할을 조명해보이기까지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후세인의 이러한 계산된 전략은 아랍권내에 반미 반이스라엘 분위기를 확산시켜 하루하루 자신의 목을 죄어들어오는 다국적군의 입지를 약화,분열을 조장하는 한편 현상황에서의 타협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행동은 말한다. 행동은 더 큰 소리를 말한다』는 이 지역의 오랜 격언처럼 후세인의 다음 행동이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해 온세계의 관심은 계속 쏠리고 있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