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중동사태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라는 별명이 붙은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번 사태는 종전과는 달리 우리에게 직접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그냥 팔짱끼고 구경만 해도 되는 「강건너 불」이 아니다.한국과의 관계를 보면 침공당한 쿠웨이트와는 72년 통상대표부를 교환설치 했고 74년부터는 대사급 외교관계로 승격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동지역 국가들중에서는 한국과 가장 오랫동안 친교를 맺어온 나라이다.
침공국인 이라크는 쿠웨이트보다 10년뒤인 81년 영사관계를 맺어 수도인 바그다드에 총영사관을 설치했는데 작년 7월 대사관계로 승격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이라크는 북한과 68년 수교함으로써 한국보다 수교는 20여년 앞섰으나 이라크이란전쟁 당시 이란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80년에 단교하고 말았다. 그동안 북한은 이라크와의 국교회복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 왔으나 이라크가 갖고 있는 배신감을 씻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수교한 중동지역 16개국중 가장 늦게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가 이라크이지만 경제관계는 그동안 대폭 확대되어 쿠웨이트와 별로 차이가 없다. 한국은 이라크(3만5천배럴) 쿠웨이트(7만배럴)로부터 하루 10만5천배럴(전체 원유수입량의 약 11%)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해외건설 미수금은 쿠웨이트 3천2백만달러,이라크 5억∼6억달러이고 수주잔고는 양국이 각각 1억7천만달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은 근로자를 포함 1천3백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우리와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나라가 갑자기 전쟁당사국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우리에게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뜻 어느 한쪽편을 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침공한 쪽이 당연히 국제적 제재를 받아야 하고 한국도 미ㆍ영ㆍ불ㆍ일 등 전통적 우방과 보조를 맞춰 이라크에 제재조치를 취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원유수입 중단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한다 하더라도 다른 경제적 제재는 해외건설과 교민보호 때문에 즉각 취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의 대중동외교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의 리처드ㆍ솔로몬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지역 담당차관보는 8일 유종하 외무차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엔의 제재결의에 한국이 동조해 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더욱 난처하게 되고 말았다.
이제는 상황이 이라크와 쿠웨이트간의 전쟁이 아니라 미국과 이라크간의 대전으로 바뀌어버린 이상 한국으로선 더이상 우물쭈물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세계여론의 흐름도 그렇고 해서 할 수 없이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유엔이 결의한 대이라크 경제제재에 동참하기로 방침을 결정했으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한 것 같다. 원유확보는 물론 현지의 적잖은 교민과 건설이익 등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한국이 안심해도 좋을 정도로 미국이 얼마나 보장을 해줄 수 있는지가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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