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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교류 전제조건/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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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교류 전제조건/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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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신뢰회복ㆍ재야 대북관 시정 시급지난 20년간 우리 국민은 남북접촉과정에서 수 없이 실망했고 또 번번이 좌절해 왔다. 뻔히 백일몽으로 끝날 것을 예견하면서도 모처럼 남북한간에 어떤 형식으로든 대화가 이어지면 「혹 이번에는 뭔가 이루어 질까」하고 한껏 기대를 부풀리곤 했다. 그러나 대화는 항상 별스럽지 않은 사단으로 단절되었고 그때마다 다시는 속지 않는다고 다짐했지만,재차 남북접촉의 새로운 실마리가 풀릴 때면 너나 없이 가슴이 다시 뛰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영원히 초연할 수 없는 존재이다.

7ㆍ20 「남북대교류」선언이 발표되었을때,그 획기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가 반신반의 했다. 우선 그것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정부측의 국내용 카드라는 심증 때문에 개운치 않았고,무엇보다 과거의 예로 볼 때,성사되기 매우 어려우리라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이들은 정부가 정작 대붕의 뜻을 가지고 남북대교류를 선포할 양이면,적어도 문익환목사와 임수경양은 내놓고 국가보안법 문제도 어떤 방식으로든 앞선 자세로 매듭을 지어놓고 터뜨려야 앞뒤가 맞지 않겠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또한 신중한 측은 이처럼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면서도 정부가 치밀하고 성실한 사전준비를 하지 않은 듯 싶어 사후에 벌어질 일들을 앞서 걱정하기도 했다. 이 모두가 정부에 대한 신뢰부족과 무관하지 않은 반응들이었다. 역사적인 「특별담화」는 끝내 시중의 주가에도 별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범민족대회의 예비회담이 무산되는 과정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계속 허둥대며 국민에게 믿음을 선사하지 못하고 있다. 방북신청만 해도 그렇다. 그것이 북한의 거부로 인해 무위로 끝나는 경우 실향민의 저린 가슴을 정부는 어떻게 위무할 것인가.

성사가 되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상대편의 의표를 찌르고 알량한 명분만을 취하려고 「남북대교류」를 주장했다면,정부는 아직도 지난시대의 유산인 승부전략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언론은 무원칙한 정부의 태도와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대해서 잦은 지적을 하면서,전민련에 관하여는 대체로 입을 다물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향방을 논함에 있어 이번 범민족대회의 준비를 둘러싸고 전민련이 저지른 오류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우선 우리는 범민족대회의 실체에 관하여 보다 허심탄회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마치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순수한 민간차원의 교류인양 또 범민족적 성격의 행사인 듯 주장되지만,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선 이 대회의 북쪽 당사자인 「조평통」은 세상이 다아는 관제단체이다. 또한 우리가 전민련의 민족과 통일에 대한 충정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인다 해도 그들 자신이 남한의 통일세력을 홀로 대표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58개 단체의 몇몇과 같은 반열에 놓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민련이 민족과 통일의 숭고한 가치를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비록 정치적으로 조직화되지 않았을 망정 민족통일의 열망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그러면서도 굳이 그들의 뜻이 전민련에 의하여 대표되기를 꺼리는 많은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어느 경우에도 「국가안의 국가」로 행세해서는 안된다. 세상이 다 알듯이 전민련은 현정권과 친화성이 강한 집단이 아니다. 아예 많은 이가 이를 반정부내지 반체제집단으로 간주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전민련의 현정권에 대한 비판은 매우 본질적이며,특히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불신은 대단해서 아예 정부를 「반통일세력」으로 간주하기 까지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민련의 정부에 대한 태도를 탓하려는게 아니다. 다만 전민련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이번 범민족대회 준비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전민련은 북한의 독선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으레 꿀먹은 벙어리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보아온 것이지만 전민련등 일부 재야세력은 아예 북한에 대한 비판을 금기로 삼고 있다. 아마도 이들의 대답인즉,남북한이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마당에 북한을 자극하거나 비판하면 되겠느냐는 얘기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에 대해서는 으레 적대적인,거의 증오에 찬 비판을 일삼으면서,북한에 대해서는 끝없는 관용과 이해를 앞세우는 데는 누가 보아도 균형감이 상실되어 있다. 해외의 믿을 만한 인권단체들에 의해 보고되는 북한의 비참한 인권상황이나 각종의 체제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우려 조차 없이,저쪽을 마치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인양 대하며 삼척동자의 눈에도 드러나는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성실한 파트너로 등장하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가 전민련에게 거는 간절한 기대는 그들이 이제 북한체제의 반이성과 미망에 대해서도 눈을 바르게 뜨고 최소한의 시시비비의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데는 적어도 두가지 절실한 뜻이 담겨있다. 그 하나는 전민련등 일부 재야가 북한에 대해 계속 침묵하고 더나아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복창을 계속할 때,이는 본의 아니게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전민련등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한 북한은 자신의 통일전선전술이 남한에서 잘 먹혀 들어간다고 생각할 것이며,그렇게 되면 그들은 시대착오적인 전략ㆍ전술을 거둬들이기는 커녕 오히려 이에 더 집착하게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민련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두번째로 우리가 크게 우려하는 것은 전민련이 민족통일문제에 대해 기존의 접근방식을 계속 견지하는 경우,남한내의 보수집권세력은 이를 기화로 통일문제에 관하여 몸을 더욱 움츠릴 것이며,그렇게 되면 체제는 더욱 우향화되고 역시 통일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는 점이다. 문ㆍ임 두사람의 방북이후 공안정국이 들어섰던 저간의 상황변화를 되돌아보면 이러한 우려는 지나친게 아니다. 전민련등이 북한의 장단에 맞춰 계속 같은 곡조의 노래만 되풀이 한다면,정부내의 통일지향적인 몇몇 리버럴한 정책입안자들도 끝내 그 안의 냉전주의자들에게 밀려 설자리를 잃고 만다는 사실도 한번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또한 전민련이 원하는 바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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