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서는 「국교수립」을,또 한쪽에서는 「경제협력」을 앞세워온 한국과 소련의 첫 정부간 회담이 끝났다. 이번에도 우리측 대표는 『수교의 윤곽이 잡혔으며,기술적인 문제만 남았다』고 말했다. 앞서 여당대표단이 소련을 다녀온 뒤에 말했던 내용과 엇비슷한 말이다.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련측의 마슬류코프 제1부총리는 『두나라 관계는 올들어 큰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외교관계 설정에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지금까지 듣던 것과 비슷한 말이다.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양쪽 모두 『수교와 경제협력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인정한 점이다. 아마 첫 정부간회담이 한걸음이나마 진전한 것이 있다면,소련측이 경제협력을 국교수립을 전제로 하는 것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첫 회담에서 소련측은 두 나라의 경제협력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합작 또는 투자의 과실을 제품으로 받아가는 「보상거래」 조건의 프로젝트가 22개,소련이 필요로 하는 장비,내구소비재 등 상품 40개의 세목이 제시됐다.
소련측이 제시한 세목은 물론 소련측의 요구사항이요 희망사항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와 상품협력 희망에 대해 우리측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동서독 통합협상과정의 선례로 보더라도 서울모스크바 협상도 소련이 필요로 하는 「경제」와,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치」를 서로 주고받는 과정은 어차피 불가피함을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은 비단 한ㆍ소 두나라가 필요로할 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ㆍ발전을 위해서,그리고 한걸음 나아가 세계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공헌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본란(7월30일자)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형편은 경제대국인 서독과 같을 수는 없다. 또 하나에서 끝까지 공개적으로 외교를 진행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큰 줄기는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국민의 동의를 얻어 진행하는 것이 온당하다.
이번에 소련측에 의해 제시된 경제협력의 규모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국민은 알아야 할 것이다. 경제협력은 우리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주고받는 것이 원칙이다.
정부는 먼저 소련과의 경제협력규모와 방법에 대한 복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서울모스크바사이의 국교수립은 탈냉전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몇몇 당국자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공을 서두른 나머지 실리와의 균형을 잃는다면 그 정책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란다. 두나라의 국교관계 수립은 두 나라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이지,어느 한쪽이 「선심」으로 베푸는 것은 아니다.
정부나 교섭실무자들은 역사앞에서 국가를 대표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자세로 협상에 임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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