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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제 개헌론(이성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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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제 개헌론(이성춘칼럼)

입력
1990.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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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든ㆍBㆍ존슨은 미국의 역대 부통령중 가장 불우하고 외롭게 분을 삭이며 부통령을 지낸 인사중의 하나다.헌법상 행정부의 제2인자이면서도 케네디대통령이 이끄는 하버드대 출신 수재들이 포진한 틈속에서 온갖 천대와 찬밥을 먹으며 지낸 것이다.

부통령이 된 후 존슨은 상원 개회중 의장으로 사회를 보고 케네디를 대신해서 일부 후진국을 순방한 것이 고작이었다. 백악관 수뇌회의에 참석은 커녕 참모들로부터 「촌사람」 「시골농사꾼」이란 빈정거림과 손가락질을 받기까지 했다.

프랭클린ㆍ루스벨트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트루먼은 부통령 재임3개월동안 루스벨트가 주재하는 최고정책회의에 공식참석한 것은 단 두차례에 불과했다고 훗날 술회했다.

존슨이나 트루먼에 비하면 리처드ㆍ닉슨과 조지ㆍ부시 현대통령은 매우 행복하게 부통령을 지냈다. 39살때 상원의원에서 부통령이된 닉슨은 재임8년간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소련 동구 남미 극동지역 55개국을 순방하면서 외교적 활동을 벌인 것이다. 특히 닉슨은 아이젠하워가 한때 심장병으로 쓰러지자 두달동안 조심스럽게 준대통령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1공화국시절 부통령은 「대통령이 유고때 승계할 수 있는」(헌법52조) 중요한 지위이면서도 철저하게 푸대접을 받았다. 이승만대통령의 독선 전횡에 분노해온 이시영옹은 국민방위군사건이 터지자 시위소찬(직책은 다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여 녹만 먹는일)에 자괴,개탄하며 사직서를 냈다. 그것 뿐이랴 야당후보로 당선된 장면부통령은 정부통령 취임식장에 아예 정부가 자리조차 마련해주지 않았다. 장면은 나중 『헌법상 부통령은 참의원의원의장 탄핵재판소장 헌법위원장 등의 중요직책을 자동겸직하게 되어 있는데도 자유당 정권은 야당출신 부통령을 무력화시키려고 이들 기구의 구성을 끝까지 묵살했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한마디로 이대통령은 재임중 이시영 김성수 함태영 장면 등 역대부통령과 국가의 중요정책이나 인사문제등에 관해 단한번도 의논한 적이 없이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래서 부통령은 「장식품」 「대통령의 유고를 기다리는 대기직」이라고 불리기까지 한 것이다.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지난달말 정기 전당대회에서 밝힌 부통령제 신설 개헌발언이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지금까지 거여인 민자당의 내각제개헌의도에 단호히 반대,저지를 역설해 왔던 그가 또다른 개헌논의를 제기한 점이다. 또한 개헌방향이 현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부통령제,그것도 과거와 같이 승계만을 기다리는 시위소찬형,형식적인 장식용이 아니라 국무회의의 부의장으로 실질적인 2인자의 역할을 한다는데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즉 관심의 핵심은 이렇게 될 경우 장차 정치의 재편방향과 판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부통령제 개헌얘기가 나오자 다른 정당들은 사뭇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즉 민자당은 「아직도 대통령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여당의 내부분열을 유도하려는 것」 「등원협상용」이라고 부정과 함께 경계하는가 하면 야당통합논의의 파트너인 민주당은 「이기택총재와의 대권밀약설로 당내 진통을 치르고 있는 판에 공연한 부채질이다」 「자신의 2선 퇴진론에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평민당은 부통령제 채택은 김총재의 과거부터의 지론이며 결코 등원협상용이 아니라고 일축하여 대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부통령제 도입론에 대해 최근에 와서 민자당의 일각에선 장차 『내각제안과 함께 모든 개헌논의의 물꼬를 트는 것』이라고 은근히 반기는 표정인가 하면 노태우대통령과 이심전심으로 통한다는 박철언의원은 『내각제개헌이 끝내 국민과 야당의 반대로 어렵게 될 경우 현대통령제의 모순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 임기4년 연임제,부통령제도입,대통령과 국회관계의 재정립등을 제시하여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래저래 국민으로서는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김총재의 개헌발언자체를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민주체제에서 정치인,특히 한정당의 지도자가 장래 민주정치발전과 정국안정을 위해 개헌론을 제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개헌론을 제기하는 데는 몇가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국민들이 개헌얘기만 나오면 매우 민감하게 알레르기성반응을 보이는 풍토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국민들은 아무리 훌륭한 개헌론이라도 일단은 경계와 의구심부터 갖는 습성이 몸에 베어왔다. 역대 집권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을 속이고 장기집권을 획책,헌정을 일그러뜨린 때문이다.

따라서 부통령제 도입등에 따른 개헌이 김총재의 확고한 구상이라면 다음의 몇가지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

첫째는 부통령제 개헌발언의 진의와 참뜻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총선에서 제기할 정책공약이라 하더라도 워낙 시기가 시기인만큼 국민의 궁금증을 하루빨리 벗겨주는 것이 타당하다. 다음으로 이같은 안이 진정 사심없이,오직 90년대∼2천년대의 정치발전을 겨냥한 국가백년지대계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지역감정해소를 명분으로 다른 정당에서 의구심을 갖는 이기택 민주당총재와의 러닝메이트를 상정한 대권구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만의하나 이를 겨냥한 것이라면,지난번 거여의 내각제개헌론이 3당통합때 대권순환담당 밀약일 경우 용납할 수 없다는 똑같은 논리로 이것 역시 국민의 반대를 자초하게 될 게 분명하다. 개헌은 어떤일이 있어도 위인설관식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우리의 역대집권자들의 권력욕심과 파행헌정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실권을 부여받는 부통령제의 실효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권있는 부통령」의 도입은 후계자를 기르고 또 그에게 장차 국정운영의 지도력을 수습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더러 대통령의 짐을 덜어준다는 잇점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반면 국무회의 부의장까지 맡는 힘있는 부통령제신설은 곧 제2의 청와대를 신설하는 것이며 나아가 대통령파­부통령파 등에 의한 집권세력 내부의 분열로 오히려 국정을 잘못되게 하고 끝내 정국불안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부작용과 역기능을 초래할 여지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김총재와 평민당은 국민의 궁금증을 하루빨리 풀어주기를 기대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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