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통일원 장관께사담 같아서 좀 무엇합니다만,오늘 장관께 글을 쓰는 감회가,나로서는 적지 않습니다. 한국일보지면 이 자리에,주말마다 이런 글을 쓰기 시작한지가 이번주로 꼭 1년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작년 이맘때 「세평」의 첫번 글을 통일원 장관앞으로 썼더니,「세평」의 2년째 첫번 글을 다시 통일원 새 장관앞으로 쓰게 된 것입니다. 새삼 여러 생각을 하게 되고,그때나 지금이나,통일논의의 혼선이 거듭되는 듯한 안타까움이 사무치기도 합니다.
지금도 기억이 새롭습니다만,작년 이맘 때는,문익환목사등의 잇따른 밀입북사건과 그 뒤끝 공안정국의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6공정부가 7ㆍ7선언을 덜렁 내놓고 후속조치를 마련 못한 것이 그 위기의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7ㆍ7선언으로 모양새는 갖춘 듯하나,정작의 통일정책 제시는 없지 않느냐고 당시의 통일원 이홍구장관에게 물은 것이 「세평」의 첫번 글이었습니다.
그 뒤 우리 정부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정리해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통일논의의 혼선은 가시지를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난번 7ㆍ20 대교류선언이 있고 나서는 정부 방침을 종잡기조차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엊그제의 장관회견으로 이 혼선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듯하기는 합니다. 하지만,장관의 1문1답 기사를 다 읽고 나서도,정부 방침에 일관성이 있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그저 7ㆍ20선언의 모양새를 위해서,판문점 범민족대회는 안되고 평양 범민족대회는 괜찮다,그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의 선별방북은 안되고 평양 이 대회의 선별방북은 괜찮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면,이 앞뒤는 누가,어떻게 꿰맞추어야 하는 것입니까. 또 이 방침이 기정사실로 되었을때,정부의 이른바 창구1원화정책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렇게 정부의 통일정책이 불투명한 가운데,그래도 남ㆍ북 총리회담(북에서 말하는 고위급정치군사회담)이 열리게 된 것은 큰 성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과 관련해서도 나는 우리 정부의 불투명한 자세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난달 26일 판문점에서 남북이 서명ㆍ교환한 합의문 제15항(취재활동)에 관한 것입니다. 이 「언론조항」은 총리회담의 취재를 보장하며 『취재활동은 남ㆍ북간의 신뢰와 단합,화해와 통일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보도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기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합의내용은 72년 여름 남북적회담때 합의했던 「언론조항」과 거의 비슷하고 그 문면만을 보아서는 나무랄데가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72년 평양의 남북적 제1차 본회담(8ㆍ30∼9ㆍ3)과 서울의 제2차 본회담(9ㆍ12∼16)을 취재해 본 경험에 비추어서는,그 지당한 합의내용이 사실은 취재ㆍ보도의 큰 제약이었음을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 제약은 제2차 서울회담이 있은 직후 이후락 남북조절위원장이 남ㆍ북관계 보도를 자제하도록 요구하는 공한을 언론단체에 보내고,그 전문을 신문마다 1면(9월29일자)에 싣도록한 뒤,더 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그 공한은 남북적 합의문「언론조항」에 근거한 북측항의에 따라 나온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 북측 항의는,북적자문위원 윤기복(지금의 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장)이 서울 본회담에서 「민족의 태양」운운하며 김일성을 찬양하는 연설을 했고,서울의 신문 논조가 이에 반발한데서 비롯됐던 것입니다. 이 뒤의 남ㆍ북대화는 합당한 보도와 논평을 떠난 곳에서 진행이 됐고,결국은 그해 10월의 남북합작 개헌유신으로 귀결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놓고,장관께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런 것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당한 문면의 남ㆍ북간 「언론조항」은 우리쪽 언론의 일방적인 제약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북의 언론이란 「위대한 수령이 창간하시고 지도하시는 주체의 출판보도물」이며 「공화국 북반부의 사회주의 건설을 다구치고 남조선혁명을 앞당기기 위한 내용」(「출판보도물에 대한 당의 방침」85년)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앞서 본것 같은 지당한 문면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번 총리회담 합의문은 언론에 관한 한,비대칭이요,불평등이며,우리쪽에만 불리한 것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주체의 출판보도물」은 그 「언론조항」의 문면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7월3일 총리회담의 대강을 합의한 사실을 「우리측의 진지하고 성의있는 노력의 결과」라고 해설한 4일자의 「로동신문」은 그 회담 상대인 강영훈총리를 「괴뢰 국무총리란자」라 호칭하고 있습니다. 「언론조항」이 의제로 된다면 이런 것쯤 먼저 항의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음으로는 판문점에 나간 우리 정부 대표에게 과연 「언론조항」에 합의할 권한이 있었더냐는 것입니다. 72년 당시 3공이나 5공이라면,그럴만한 사실적인 힘이 있었다고 할만 했습니다. 그러나 6공은 처음부터 표방하는 바가 다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이번 「언론조항」은 정부로서 책임 못질 일을 합의해준 것이나 다름 없지 않습니까.
이런말을 하는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우리 체제의 강점은 자유스런 언론에 있습니다. 여론을 무시한 통일논의가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이 정부나 재야의 독점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남ㆍ북관계가 미묘하다고 해도,언론의 자승자박이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그것은 우리 체제의 무장해제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번 「언론조항」에서 북이 이점을 노렸다고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줄로 압니다.
바라건대,정부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비추어 시는 시,비는 비라고 할 수 있는 대북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여론앞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의 의도를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놓고,언론은 우리 정부도 비판하지만,북의 자세도 비판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야 바른 통일정책의 정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언론조항」따위 북과의 합의를 서두느니 여론과의 합의를 앞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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